ADVERTISEMENT

“윤한덕, 20년간 한국 응급의료 떠받친 아틀라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저희가 도입하는 응급의료 헬리콥터에 선생님의 존함을 새기고 선생님의 비행복을 항시 준비하겠습니다.”

이국종, 중앙응급센터장 추도사 #“선물 남긴 닥터헬기와 함께할 것”

10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NMC)에서 열린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이렇게 약속했다.

이 교수는 이날 추도사를 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병원에 배정돼 머지않아 운행을 시작할 닥터헬기가 윤 센터장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닥터헬기 도입에 윤 센터장이 많은 도움을 준 바 있다. 이 교수는 “선생님이 타 기체(헬기)와 혼동하시지 않도록 기체 표면에 선생님의 존함과 함께 콜 사인(Call sign)인 ‘아틀라스(Atlas)’를 크게 박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설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휴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을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인 아틀라스에 비유했다. 이 교수는 아틀라스가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면서 본인에게 형벌과도 같은 상황을 견디고 있는 덕분에 우리가 하늘 아래 살고 있듯 윤 센터장이 한국의 응급의료를 떠받쳐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숙고하셨던 중앙응급의료센터장직 이임에 대해서 한사코 반대한 데 대해서 저는 아직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반도 전체를 들어 올려 거꾸로 흔들어 털어 보아도, 선생님과 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선생님은 20년간 의료계뿐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가장 어렵고 가늠하기조차 불가능한 중과부적의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쳐 왔습니다. 응급의료의 현실이 견딜 수 없이 절망적임을 인지하면서도, 개선의 노력조차 무의미하다는 버려진 섹터(부문)를 짊어지고 끌고 나아가야만 한다는 실질적인 자신의 운명과 그럼에도 이 방치된 섹터를 무의미한 채로 남겨놓을 수는 없다는 선생님의 정의를 추구하는 사명감을 화력으로 삼아 본인 스스로를 태워 산화시켰습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 내부로부터의 반발과 국내 정치상황이 변할 때 마다 불어오는 정책적 뒤틀림 사이에서 선생님의 버퍼(buffer·완충력)는 끊임없이 소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현되기 마련입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라는 세간의 진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물러설 자리가 없는 사지로 뛰어들어서는 피투성이 싸움을 하면서도 다시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리해 내는 선생님께 저는 항상 경외감을 느껴 왔습니다”고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윤 센터장의 영정 사진은 가족들의 품에 안겨 집무실로 가는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영결식장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부터 100m쯤 떨어진 행정동에 윤 센터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윤 센터장은 4일 이곳 2층에서 발견됐다. 단출하고 낡은 윤 센터장의 집무실 문 앞에는 일회용 커피잔 몇 개와 전자담배,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그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여 고인을 기렸다. 윤 센터장의 유골은 경기 포천의 광릉추모공원에 안장된다.

신성식·이수정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