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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쟁 기억 어디까지 진실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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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호 21면

기억 전쟁

기억 전쟁

기억 전쟁
임지현 지음
휴머니스트

노예제·전쟁 범죄 책임 따질 때 #가·피해자 뒤바뀐 경우 살펴야 #임지현 교수 도발적 문제 제기 #친일청산, 80년 광주도 다뤄

‘역사적 기억’은 국가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역사적 시기·사건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억이다. 정체성이나 자긍심의 핵심이기에 1mm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역사적 기억’이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기억 전쟁』은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전쟁’을 파헤쳤다.

전쟁은 교통 전쟁이나 입시 전쟁처럼,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기억 전쟁’도 비유에 불과할까. 아니면 ‘기억 전쟁’도 어엿한 전쟁인가. 만약 그렇다면 ‘기억 전쟁’에도 열전(熱戰)처럼 목적이 있고 승패가 있을 것이다.

열전의 목표가 영토라면, ‘기억 전쟁’의 목표는 뭘까. 책임 회피나 ‘우리가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니다. 우리도 희생자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포함될 것 같다. 열전에 총을 먼저 쏜 도발자가 있는 것처럼 ‘기억 전쟁’에도 침략자가 있을 것이다.

미국 글렌데일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기억 전쟁』의 저자 서강대 임지현 교수는 소녀상에서 ‘기억 전쟁’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국제연대의 실마리를 본다. [사진 Ka-cw2018]

미국 글렌데일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기억 전쟁』의 저자 서강대 임지현 교수는 소녀상에서 ‘기억 전쟁’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국제연대의 실마리를 본다. [사진 Ka-cw2018]

『기억 전쟁』은 에필로그·프롤로그에서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난다. 기억은 전쟁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소망이 담긴 말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민족적·국제적·세계적 차원의 ‘역사적 기억’이 총칼 전쟁 대신 대화의 원인이 될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기억 전쟁』에 나오는 ‘기억 전쟁’의 참상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부제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가 알려주는 것처럼 가해자가 뻔뻔스럽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가해자는 ‘그 자체는 매우 훌륭한’ 실증주의적 역사 방법론을 부인주의(negationism)의 도구로 삼는다. 그들이 책임질 사건 자체가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실증주의를 방패로 삼는다.

저자는 그동안 ‘초국가적 역사(超國家的 歷史, transnational history)’ 관점에서 역사 담론에 기여했다. 『기억 전쟁』도 연장선 위에 있다. 저자의 ‘기억 전쟁’ 내러티브에 나오는 전쟁터는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집단 학살, 난징대학살, 미국 노예제, 식민지에서 자행된 원주민 학살, 아르메니아 집단살해, 일본군 위안부, 1980년 광주 등이다.

이들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들이 만나고 있다. 만남에서 임지현 교수는 ‘전 지구적 기억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홀로코스트·성노예 피해자들이 만났다. 미국 글렌데일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또한 만남의 산물이다. 글렌데일은 집단살해의 피해자였던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세계 최대 해외 공동체다.

저자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1999) 이래 자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억 전쟁』도 도발적이다. 저자는 ‘맥락을 벗어난 인용’의 희생자가 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행위에 대해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가?”

1980년 광주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물론 12·12 쿠데타 지도부와 유신체제의 반민주적 기득권 세력에게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광주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전두환 일당에게만 학살의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구성되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이다.” ‘적전 분열을 낳는 발언이다’라는 비난을 살 수 있는 발언이다.

우리는 ‘제1차 세계 기억 대전’을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승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원을 따져보면, 책임이라는 말 자체가 원통함을 풀어달라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한다는 의미가 있다.” 책임지고 응답하려는 쪽이 승자가 되면 좋겠다.

김환영 대기자/중앙 콘텐트랩 whanyu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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