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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설이 우울한 당신에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1호 29면

정형모 문화전문기자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실장

정형모 문화전문기자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실장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표정들이 별로 밝아보이질 않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뉴스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 구속에 따른 여야 충돌이 그렇고, 북한 비핵화는 실제로 진전된 것이 없는데, 아침마다 미세먼지 수치부터 확인해야 하는 우울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거리에서 ‘폐업정리’ ‘임대문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같은 안내문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종이 한 장 붙여놓고 홀연 떠나야 하는 가장들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울적해진 마음이 요즘 흥행하고 있다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쓴웃음만 몇 번 머금다 나왔습니다.

무조건 남의 탓만 하는 세상입니다.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적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완전한 인간인가요. 지금도 너나없이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을진대,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신 “내 탓이요”라는 말이 얼마나 위대한 실천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오늘입니다.

문득 자문해봅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예술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데 문화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그저 돈 많고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즐기는 사치 아닐까-.

오래전 영국 출장길에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마크 로스코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묵직한 색면화를 보면서, 머릿속 찌꺼기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명상의 공간이었죠. 세계적인 뇌과학자 에릭 캔델은 “로스코는 화폭에 놀라운 공간과 빛 감각을 창조함으로써 감상자들로 하여금 신비하고,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그것은, 예술이 가진 정화와 치유의 능력일 터입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신관 지하의 김환기 대작 앞에 설치된 1인용 관람 의자. [사진 서울미술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신관 지하의 김환기 대작 앞에 설치된 1인용 관람 의자. [사진 서울미술관]

최근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신관 M2 오픈 기자 간담회에 갔다가 지하 전시장에서 당시와 똑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길이 2m가 훌쩍 넘는 김환기의 푸른 점화 ‘십만 개의 점 04-VI-73 #316’(1973)이 무한의 주인처럼 걸려있었습니다. 이 미술관 설립이래 최초로 공개한 소장품인데, 한국 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명작이죠.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작품 앞에 놓인 1인용 소파였습니다. 거기 앉았습니다. 은하수 가득한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1970년 1월 27일 일기)라던 작가의 말이 거기 있었습니다.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에 영감을 준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읊는 최불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시장을 훑고 지나가네요.

“머리 위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 내 마음에는 도덕률”이라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실천이성비판』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내면에 도덕성을 갖춘 인간만이 우주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설입니다. 한 번쯤은 예술이라는 때수건으로 마음을 닦고, 문화라는 로션을 살살 발라볼 일입니다. 비록 세상이 여전히 우리를 속이려 한다 할지라도.

정형모 문화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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