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폰 '위대한 손'이냐 '부패한 손'이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23일(한국시간) 체코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28.유벤투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골키퍼'의 진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있다. 본인은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일로 오기 직전까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탈리아 검찰은 최근 "7월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를 구한 '위대한 손'이 스캔들과 연루된 '추악한 손'으로 판명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위대한 손

부폰은 17세에 이탈리아 세리에A에 데뷔했고 19세에 국가대표가 됐다. 2001년에는 역대 5위의 이적료(4590만 달러.약 440억원)를 받고 유벤투스로 팀을 옮겼다. 이는 2006년 수준에서도 역대 6위에 해당하며, 골키퍼 중에는 사상 최고 액수다. 이탈리아 전 국가대표 골키퍼 프란체스코 톨도(인터 밀란)는 "부폰과 동시대에 태어난 것이 나의 불운"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부폰의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0-1로 뒤진 체코의 파벨 네드베트(33)는 아크 서클 중앙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고, 페널티 안쪽으로 파고들어 골대를 향해 볼을 차 넣었지만 부폰의 손은 기다렸다는 듯이 막아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체코의 공격은 부폰 앞에서 '물 먹은 솜'처럼 힘을 잃어갔다. 결국 체코는 추가골을 허용, 0-2로 졌다. 체코의 골대 앞에는 2005년 '올해의 골키퍼'이자, '세계 베스트11'인 페트르 체흐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부폰은 월드컵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용의자의 손

월드컵을 앞둔 5월 이탈리아 검찰이 확보한 승부 조작 관련 도청 자료가 언론에 의해 폭로됐다. 내용은 유벤투스 루차노 모기 전 단장이 조직적으로 승부 조작에 관여했다는 내용이었다. 모기 전 단장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 지역 경기에서 심판 선정에 영향권을 행세했다는 것이다. 수사가 에이전트와 복권.도박 사업 등으로 확대됐다. 검찰은 부폰이 자기가 뛴 경기에 돈을 걸었다는 사실을 포착, 수사에 들어갔다. 부폰은 월드컵을 앞두고 오전에는 훈련, 오후에는 검찰 소환에 응하는 웃지 못할 훈련 일정을 소화했다.

프란체스코 토티 등 대표 동료는 "부폰은 부끄러운 짓을 할 선수가 아니다"라며 지원하고 있고, 부폰도 "재미로 인터넷을 통해 베팅 복표를 산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승부 조작과 관련, 유벤투스는 2부 혹은 3부 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어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게다가 최근 유벤투스의 라이벌 AC밀란이 부폰 영입에 나섰다는 언론 보도가 흘러나오면서 부폰을 더욱 난처하게 하고 있다. 최근 부폰은 "유벤투스가 강등되더라도 팀에 잔류할 의지가 있으며 모든 것은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