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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현대사 소용돌이 속 지식인의 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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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상계' 주간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지명관(左). 1965년 세계자유문화회의 일본지부 초청으로 일본여행길에 오른다. 오른쪽은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다.

경계를 넘는 여행자
지명관 지음, 다섯수레, 264쪽, 12000원

실천적 기독교인이자 평화주의 지식인인 지명관(82) 전 한림대 교수가 자서전을 펴냈다.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분단, 독재와 민주화 투쟁이라는 현대사를 살아온 한 지식인의 체험이 녹아있는 책이다. 제목이 '경계를 넘는 여행자'다. 공산주의에 실망해 월남했지만 남쪽의 폭력적 반공운동과는 거리를 두었고, 이번에는 박정희 정권을 피해 20여년 일본 망명 생활을 떠나야 했던 자신을 빗댄 표현이다.

그의 '경계인'적 자기인식은 해방공간, 또 4.19에서 5.16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회고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38선을 넘어 이상향을 찾아갔던 사람들은 누구나 절망했다. 38선은 꿈이 깨지는 절망의 선이었다." "민중의 혁명이란 대개 애초의 대의에서 변질해가는 양상을 띄었다. 혁명 이전에는 자기희생적이었지만 후에는 아집에 사로잡히는 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지식인이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에서 어떻게 휴머니티를 위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

그는 1960년대 민족주의 잡지 '사상계' 주간으로 일했고 73~88년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다. 'TK.생' 등의 필명으로 기고한 이 글은 당시 국내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국제적 연대구축에 기여했다. 93년 귀국해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가부장적 권위체제 대 혁명적 저항세력이라는 비타협적 대결구도를 극복한 이후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상대를 적과 우군으로 나누어온 시대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귀국을 앞둔 그가 한 심포지엄에서 했던 발언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

'사상계' 창간인 장준하, 고향 선배였던 조선일보 편집국장 선우휘, 야스에 로스케(安江良介) '세카이' 편집장, 일본 납치시절 처음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회고한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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