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마다 찾아오는 '돼지해의 저주’…통계 부정에 떠는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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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해는 자민당에겐 아주 어렵다고들 한다. 12년 전도 아주 험한 결과로 끝났다. 어렵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극복할지를 이야기합시다.”
지난 7일 일본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2019년 시무식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한 얘기다.

28일 시정방침연설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EPA=연합뉴스]

28일 시정방침연설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EPA=연합뉴스]

지난해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한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0년 9월까지다. 그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를 가를 최대 고비가 7월 참의원 선거다. 이를 앞두고 아베 총리가 시무식에서부터 긴장의 고삐를 잔뜩 조인 것이다.

돼지해마다 되풀이되는 선거 참패의 기억 #1983년 나카소네 총리때는 중의원 선거 #2007년 아베 내각땐 참의원 참패 이어져 #통계부정 사건에 2019년 최악의 스타트 #아베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방법 찾자"

하지만 아베 총리의 우려대로 그는 당장 1월부터 강펀치를 맞기 시작했다. 일본 정가를 강타한 통계 부정 사건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일본 정부가 통계 집계 방식을 바꾸면서 지난해의 임금인상률이 실제보다 높게 발표된 것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2018년 6월의 임금 상승률은 3.3%로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였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야당은 “아베노믹스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고의로 조작한 것”,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는 근거가 무너졌다”고 아베 총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도쿄 지역의 일부 대기업들이 조사 대상에서 누락되면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전국 평균 임금은 오히려 실제보다 낮게 측정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이 과소 지급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심이 출렁댔다. 아베 총리로선 2019년 최악의 스타트다.

단 한국과의 외교 갈등과 러시아와의 영토 협상 등 굵직한 외교 이슈들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아직 지지율 하락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태는 심상치 않다는 게 자민당과 총리관저의 분위기다.  본 언론들에 따르면 “12년마다 자민당을 괴롭혀온 돼지해의 저주가 올해 또 덮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돼지해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민당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시무식에서 아베 총리가 말한 ‘12년 전의 아픈 추억’ 때 일본의 총리는 아베 총리 자신이었다. 2007년 돼지해에 제1차 아베 내각이 무너졌다. 당시엔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 국민이 납부한 국민연금 납부 기록이 정부 데이터에서 사라져 일대 혼란을 빚었다. 이른바 ‘사라진 연금 문제’였다. 각료들의 망언과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그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21석 중 37석만을 얻는 역사적 참패를 당했다. 아베 총리 본인의 건강 문제까지 겹쳐 1차 아베 내각은 종언을 고했다.

전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앙포토]

전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앙포토]

‘돼지해의 저주’는 12년전뿐이 아니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가 집권했던 1983년도 마찬가지였다. ‘록히드 사건’과 관련해 수뢰혐의를 받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그해 10월 법원에서 실형 판결을 받았다. 일본 정치가 요동쳤다. 1974년 총리 사임 이후에도 자민당 정치의 막후에선 다나카 전 총리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의 총리 나카소네는 “다나카 전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그해 12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선거 이전보다 36석을 잃는 참패를 당했고, 자민당의 과반수도 무너졌다.

자민당회의서 록히드사건과 관련한 결백을 주장하는 다나카 전 일본 총리[중앙포토]

자민당회의서 록히드사건과 관련한 결백을 주장하는 다나카 전 일본 총리[중앙포토]

12년 뒤 돼지해였던 1995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 정권하에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양당은 선거 이전보다 10석을 잃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돼지해의 저주'가 또 아베 내각을 덮칠지, 아니면 자민당이 이번엔 '돼지해 트라우마'를 벗어던질 수 있을지, 일본 정치가 꿈틀대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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