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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김복동 할머니 운구, 日대사관 거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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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오전 성남시청 광장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헌화 후 평화의소녀상을 어루만져보고 있다.성남시 소녀상은 김운성(50),김서경(49) 부부 작가의 작품으로 위안부 피해자 상징물로 제작해 국내에 설치된 네 번째 작품이다.[중앙포토]

2014년 4월 15일 오전 성남시청 광장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헌화 후 평화의소녀상을 어루만져보고 있다.성남시 소녀상은 김운성(50),김서경(49) 부부 작가의 작품으로 위안부 피해자 상징물로 제작해 국내에 설치된 네 번째 작품이다.[중앙포토]

28일 향년 93세의 일기로 별세한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일본대사관 앞을 지난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졌으며 29일 11시부터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는다.
장례위 측에 따르면 발인은 2월 1일 진행되면 행렬은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 앞을 거쳐 서울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화장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남은 일본군성노예 피해자 중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마지막 말 "일본에 대한 분노" 

김 할머니는 지난 11일 병세가 악화돼 17일간 입원치료를 받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 등 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번지면서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입원 전까지 "아베에게 사죄를 받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입원 전까지 ‘아베에게 사죄를 받는 일만 남았다’고 말씀하셨고, 임종 때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일본에 대한 분노’ 한 마디만 또렷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에는 평온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모델 

1926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홍콩‧싱가포르 등지로 끌려다니며 수모를 겪었다. 1992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공개하며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UN세계인권대회’ 등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며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김 할머니의 활동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2017년 9월 개봉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할머니는 본인의 이름을 딴 '김복동의 희망' 장학재단을 만들어 분쟁지역 아동과 전쟁 중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기부활동에도 앞장섰다. 2012년에는 동료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 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주장하며 빗속 1인 시위도  

2018년 9월 외교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김복동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2018년 9월 외교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김복동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2015년 12월 28일 당시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이 세워진 뒤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과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 피켓을 들고 92세의 나이로 ‘빗속 1인시위’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11월 21일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선언한 뒤에는 "지금이라도 이 할매의 소원을 들어줘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이라고 기뻐하기도 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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