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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신용등급 A+ 중소기업을 3년만에 C등급 만든 재생에너지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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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 6500t 때문에 지난해 말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나라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한국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t당 15만~20만원이 드는데 필리핀에서는 운송비 3만원을 합쳐도 t 당 7만원이면 처리가 가능하다 보니 국내 쓰레기를 해외로 밀어내기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필리핀에서 한국은 '후진국에 쓰레기를 불법적으로 수출한 부도덕한 선진국'이란 오명을 얻었다. K-팝 등 한류로 쌓은 매력 국가란 긍정적 이미지를 쓰레기가 먹칠하고 말았다. 경기도 평택에서 불법 수출됐던 그 쓰레기가 설 연휴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악덕 수출업자를 비난하고 처벌하면 이번 문제가 말끔히 종결되는 것일까. 내막을 취재해보니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쓰레기 불법 수출이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편의성을 앞세운 한국인들의 일회용 자원 남용, 문재인 정부의 폐자원 에너지화 정책 변화에 따른 후폭풍 등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난해 1월에 이어 제2의 쓰레기 대란과 한국산 쓰레기의 불법 수출에 따른 나라 망신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필리핀 환경단체 회원들이 한국의 쓰레기 불법 수출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필리핀 환경단체 회원들이 한국의 쓰레기 불법 수출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한국의 쓰레기 불법 수출 사건이 필리핀에서 폭로된 이후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 등이 수입 중단 방침을 속속 밝혔다. 지난해 1월 중국 수출길도 이미 막혔기에 이제 한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철저히 한국에서 처리해야 한다. 현행 관련 법과 제도에 따르면 쓰레기는 발생억제(Reduce)가 환경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다. 김미경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팀장은 "한국인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132kg, 2015년 기준)이 플라스틱 생산 설비를 갖춘 63개국 중 3위로 국내 처리 한계를 넘어 과소비하고 있다"며 "중국에 이어 동남아 국가들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한 마당에 환경부는 기업의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정책을 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도 폐자원 에너지화 장려했는데=발생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e)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이다. 재활용에는 물질 자체를 회수하는 방법과 에너지로 회수하는 방법이 있다. 에너지 회수 방법으로는 몇 년 전부터 SRF 열병합 발전소가 합리적인 대안으로 꼽혀왔다. 가연성 폐기물인 종이·목재·합성섬유·합성수지(다이옥신을 유발할 수 있는 PVC 계열은 제외) 등을 선별·파쇄·건조해 고형재생연료(SRF·solid refuse fuel)를 만들고 이를 태워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일반 소각장(전국 168개)은 단순 소각해 주로 열만 생산하지만 SRF 발전소는 지역난방용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해 효율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SRF 발전소는 폐자원을 이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한다. 사진은 전남 나주 SRF 발전소. 장세정 기자

SRF 발전소는 폐자원을 이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한다. 사진은 전남 나주 SRF 발전소. 장세정 기자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7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서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에너지원으로 SRF를 인정한 이유도 단순 매립보다는 최대한 에너지를 활용하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일본의 경우도 SRF 연료로 만드는 폐기물을 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SRF 발전소는 전국에 23개가 추진될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세먼지·민원 내세워 SRF 규제=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임기 중에 미세먼지를 30% 감축하겠다고 천명하면서 SRF발전소에 불똥이 튀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권장하던 SRF 발전소가 '나쁜 발전소'로 갑자기 오명을 썼다. 실제로 환경부는 2017년 9월 SRF 관련 규제 강화 및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 SRF 사용 허가제, 품질 등급제 등을 도입했다. 탈원전 공약 때문에 원전 산업이 홍역을 앓고 있는 것처럼 규제 강화로 SRF 발전소들도 직격탄을 맞는다.
 2013년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23개 SRF 발전소 건설 사업 중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에 완공돼 순조롭게 가동 중인 SRF 발전소 7곳을 뺀 나머지는 파행을 겪고 있다. 문 정부 들어 사업 중단 6곳, 사업 검토 중단 2곳, 건설 중단 1곳, 연료 변경 1곳, 시험가동 후 중단 1곳, 시험 가동 중 1곳이다. 사업 검토 중 4곳도 이 정부에서는 무산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한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손금주 의원이 발의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SRF 발전소는 또 한 번 타격을 받게 됐다. SRF 발전소를 권장하는 차원에서 주던 인센티브(REC)를 축소함에 따라 폐자원을 에너지로 회수하는 SRF 발전소의 사업성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 SRF 발전소는 2017년 12월 준공 이후 민원 때문에 13개월째 가동을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전남 나주 SRF 발전소는 2017년 12월 준공 이후 민원 때문에 13개월째 가동을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충남 내포 신도시에 SRF 발전소와 LNG 발전소를 짓는 집단에너지 사업을 위해 2014년 5월 설립된 내포 그린에너지의 파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대 66메가 규모의 내포 발전소 사업 성공 여부는 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2015년 10월 당시 산업부가 LNG 공사계획을 승인할 때만 해도 순풍을 타는 듯했다. 2017년 2월 SRF 발전소 공사계획 승인을 신청했지만, 산업부는 대선을 거치면서 승인을 계속 미뤘고 업체는 다섯 차례나 공사계획 승인 및 인가 독촉 공문을 발송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사업자는 지난해 8월 공들여온 SRF 발전소를 포기하고 정부의 의중대로 연료비가 비싼 LNG로 사업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SRF 업계 관계자는 "내포 SRF 발전소 사업이 무산되는 것을 지켜본 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SRF 사업이 줄줄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기업만 피해=현 정부 들어 벌어진 일련의 움직임은 국내 폐자원 에너지화 업계의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가연성 폐기물 발생량이 계속 증가하는데 기존 소각시설 처리 용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10여 년 전부터 앞선 정부들이 단순 소각 대신 SRF 발전소를 대안으로 제시해왔다"며 "하지만 2년 전부터 SRF 발전소가 제때 건설되지 못하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SRF 발전소 사업이 곳곳에서 차질을 빚으면서 에너지로 살릴 수 있었던 폐자원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수집·운반·분리 업체들에겐 불과 얼마 전까지 돈이 되던 폐자원이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됐다. 처리 비용이 급증하자 무단 방치나 불법 투기가 성행했고 급기야 이번에 문제된 것처럼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SRF 연료 제조 중소기업인 삼호환경기술은 SRF 발전소에 납품할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라인을 증설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신재생에너지 정책 변화로 공급처가 사라지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장세정 기자

SRF 연료 제조 중소기업인 삼호환경기술은 SRF 발전소에 납품할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라인을 증설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신재생에너지 정책 변화로 공급처가 사라지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장세정 기자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상실하면서 멀쩡하던 SRF 관련 중소기업은 골병이 들어 신음한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삼호환경기술은 폐자원을 에너지로 회수하는 SRF 연료를 제조해 SRF 발전소에 납품해온 탄탄한 중소기업이었다. 이 업체는 정부 정책 대로 내포신도시에 66메가 규모의 SRF 발전소가 건설되면 SRF 연료 수요가 늘 것에 대비해 하루 약 300t이던 생산 설비를 2016년 270억원을 투자해 700t으로 키웠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7년에는 가동됐어야 할 내포 SRF 발전소가 정부 입김으로 LNG 발전으로 사업이 변경되면서 이 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에서 50개 업체가 견학을 오고 연 매출이 160억원이나 될 정도로 잘 나가던 이 업체의 신용 등급은 2015년만 해도 우량기업인 A+ 등급이었다. 하지만 설비를 확장한 상태에서 공급처가 막히면서 생산라인을 놀리는 바람에 매출이 급감하고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인 C등급으로 네 단계나 추락했다. 2015년 40여명이던 직원은 현재 30여명으로 줄어 일자리도 급감했다. 이장근 대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에너지 정책이 우량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곽승신 한국지역난방공사 광주전남 지사장은 나주 SRF 발전소가 법정 환경기준보다 실제 배출량이 훨씬 낮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LNG 전환을 주장해 13개월째 가동을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곽승신 한국지역난방공사 광주전남 지사장은 나주 SRF 발전소가 법정 환경기준보다 실제 배출량이 훨씬 낮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LNG 전환을 주장해 13개월째 가동을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정부가 폐기물 처리 대안 제시해야= SRF 발전소는 과연 대기환경오염을 가중하는 주범일까. 현 정부의 정책 잣대가 영향을 주기 전인 2013년 10월에 준공돼 지금도 민원 없이 잘 가동되는 부산의 생활 폐기물 연료화 및 발전시설인 부산 E&E SRF 발전소를 직접 찾아갔다. SRF 발전 과정에서 5단계 대기오염 방지 시설을 설치해 질소산화물의 실제 배출량은 26.12ppm이었고 법적 기준(70ppm 이하)보다 크게 낮았다. 먼지도 실제 배출량은 0.79mg/㎥로 법적 기준(20mg/㎥)보다 한참 아래였다. 이곳처럼 오염방지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춘 대규모 SRF 발전소를 문제 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석 부산 E&E 대표는 "LNG 연료를 SRF로 대체해 생긴 비용 절감액이 연간 30억원이고 온실가스도 1만6940t이나 줄였다"고 SRF의 장점을 설명했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 인접한 대형 소각장은 쓰레기를 단순 소각하지만 SRF 발전소는 열과 전기를 생산해 신재생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 인접한 대형 소각장은 쓰레기를 단순 소각하지만 SRF 발전소는 열과 전기를 생산해 신재생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다.

 부산과 달리 전남 나주의 경우 문재인 정부 들어 폐자원 에너지화 정책의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지역균형 발전 전략에 따라 광주·전남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나주에 지역난방공사는 1700억원을 투입해 하루 444t의 처리용량을 갖춘 SRF 열병합 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이후 사업은 순조로웠지만, 현 정부의 환경부가 SRF 관련 규제 강화 및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2017년 9월 SRF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 LNG로 바꾸라"는 민원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2017년 12월 준공한 발전소는 지금까지 13개월 동안 시설을 놀리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지난 1년간 총리실이 주도해 여덟 차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달 들어 전남도 주관으로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를 시작했지만, 또 세월만 축낼 거란 우려가 나온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생활폐기물을 나주 SRF 발전소에 반입할 길이 막히면서 매립을 더 해가고 있다. 가급적 줄여야 할 매립이 늘면서 기존 매립장 시설 사용 연한은 30년에서 15년으로 줄어들 상황이다.
 부산과 나주의 사례만 봐도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의 한쪽 측면만 들여다보면 해법보다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만 키울 뿐이다. 홍수열 소장은 "환경부가 매립 제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매립장으로 못 가는 쓰레기를 태워서 에너지로 회수할 SRF 발전소를 확충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미세먼지 저감 정책과 주민 민원에 편승해 SRF 발전소 건설에 오히려 제동을 걸었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 팀장은 "환경부가 기업들의 일회용품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린피스는 한국 기업의 쓰레리 불법 수출 문제를 비판해왔다. 장세정 기자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 팀장은 "환경부가 기업들의 일회용품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린피스는 한국 기업의 쓰레리 불법 수출 문제를 비판해왔다. 장세정 기자

 환경부 관계자는 "국민이 동참해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폐자원을 SRF 발전소에서 에너지로 만드는 것보다 원료 물질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실현가능한 대안이 아니라 뜬구름잡기식일 뿐이다. 경제 활동에 따라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쓰레기는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제2의 쓰레기 대란을 막을 구체적 미래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됐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박규민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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