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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오거돈·송철호·김경수 “김해 신공항 백지화하라” 협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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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영남권 신공항, 가덕도로 ‘항로’ 바뀌나

지난 16일 울산시청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한목소리로 김해 신공항 반대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울산시청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한목소리로 김해 신공항 반대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에 장형철 부산시 시민행복본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장 본부장은 얼마 전까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오거돈 시장을 돕고 있다. 그는 “‘논설위원이 간다’도 좋고, 인터뷰도 좋으니 오거돈 시장을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오 시장이 곧 김해 신공항(정확히는 김해공항의 확장) 백지화를 위해 국토부와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면서다. 솔직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남권 신공항 논란을 다시 촉발한다? 옳고 그른 걸 떠나, 되겠어?’

“환경단체 반발로 착공도 못 할 것 #국토부 ‘항공 마피아’는 손 떼라” #PK 트리오, 논란 재점화 나섰으나 #국토부는 정책변경 불가 입장 확고 #오 시장 등 총리실로 문제 이관 추진 #여권 중앙-지방정부 정책 갈등 #총리실 검증위 구성이 분수령 #신공항 원점서 재논의할지 주목

어쨌든 오 시장을 지난 21일 부산 서면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에는 회의적 생각을 갖고 내려갔으나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점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 시장을 만나러 부산역에서 서면까지 이동하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넌지시 김해 신공항에 문제는 없냐고 물어봤다.

“24시간 밤새도록 하는 허브공항 되려면, 완전히 트여가 있어야 할 거 아이요. 그런데 김해는 산이 있단 말요. 과거에 산에 걸려 중국 비행기 백몇십명 다 죽었던 거 아이요. (국토부는) V자형으로 활주로 하면 된다 해 싸지만, 바다(가덕도)로 들어와 바다로 나가는 게 맞지.”

부산 현지 여론을 반영하듯 택시기사는 128명이 숨진 2002년의 중국 민항기 돗대산 추락사고를 아직도 말하고 있었다.

박태수 부산시장 정책특보는 “내부 여론조사 결과 가덕신공항을 지지하는 부산시민 여론은 65%에 이른다”며 “김해 신공항이 기정사실인 상황이라 그렇지, 정식으로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 지지여론은 100%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책 결정을 번복한다는 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오 시장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대형국책사업과 관련해 한번 내린 결론을 뒤집으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그래도 잘못된 정책은 바꿔야 한다. 4대강 사업만 해도 잘못된 것을 밀어붙였다가 지금까지도 문제가 계속되지 않나. 되돌릴 수 없는 정책도 있지만, 되돌릴 수 있는 정책도 있다. 김해 신공항은 아직 사업 시작도 안 한 단계니 지금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해 신공항이 왜 문제인가.
“일단 안전 문제다. 중국 민항기 충돌사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해공항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어느 방향을 봐도 안전하지 않다. 이곳을 확장하려고 계획대로 3.2㎞짜리 활주로를 만들려면 무려 산을 세 개나 깎아야 한다. (※국토부는 산을 절취할 필요 없다는 입장) 뿐만 아니라 평강천이라는 강을 1.7㎞ 매립해야 한다. 그리되면 수로 자체가 바뀐다. 그 지역은 철새보호지역에 문화재보호지역인데 환경단체가 가만있겠는가. 소음은 어떤가. 지금도 김해시민이 고통스러워하는데, 확장하면 부산시민에게까지 피해가 확대된다. 더군다나 김해공항은 (군과 같이 써야 하는) 군사공항이다. 24시간 관문공항으로의 운영이 불가능하다. 비용도 문제다. 국토부의 김해 신공항 기본계획을 보면 6조7000억 정도 들어간다. 여기엔 산을 절취하는 비용 1조5000억원 이상이 빠져있다. 김해공항은 민원과 강력한 반대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비용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설령 2019년에 착공한다 해도 4년, 5년, 6년, 계속 공사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결국 다시 가덕도에 신공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
“안전, 소음, 환경에 문제가 있고 확장성은 전무한,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을 왜 밀어붙이는가. 이런 문제를 모두 해소할 ‘제3의 지대’가 있는데. 7조원 정도면 가덕도에 24시간 관문공항을 만들 수 있다. 남북철도가 유라시아 대륙까지 뻗어 나가는 시대가 오면 엄청난 물자와 사람이 한국에 모여들 것이다.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좋은 물류 여건을 가진 부산을 통해 국가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데 중앙정부가 눈 감고 있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러나 국토부는 번복할 수 없다고 결론 낸 상태 아닌가.
“김해공항 확장은 이미 오래전 세 번이나 전문용역기관에 검토를 의뢰했는데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것이다. 그걸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밀어붙였다. 그때의 ‘항공 마피아’들이 지금 국토부에 그대로 포진하고 있다.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인천공항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데도 해외통로가 인천공항 일극(一極) 체제다. 이건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분권과 균형발전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자칫 지역갈등이 다시 불붙지 않겠나.
“지형이 변했다. 예전만 해도 사실상 부산 1대 4(대구·경북·울산·경남)의 구도였다. 네 군데가 다 가덕도에 반대하고 밀양 쪽에 섰다. 지금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대구·경북 쪽은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K2-대구공항 통합 이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지사나 권영진 대구시장은 통합 신공항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 지사는 내게 ‘과거처럼 가덕신공항에 반대하지 않을 테니 K2-대구공항 통합 이전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경남과 울산은 지금 나랑 손을 잡고 있다. 과거와 같은 부산과 TK의 갈등, PK 내부 분열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오 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은 지난 16일 “국토부가 내놓은 김해 신공항은 동남권 관문공항이 될 수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내용의 ‘부·울·경 시도지사 공동입장문’을 발표했다. 오 시장이 김해 신공항 백지화 논란에 불을 붙이자 송 시장과 김 지사가 가세해 화력을 키우고 있는 양상이다.

세 사람은 모두 ‘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영남권에 뿌리내린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동향(同鄕)의 정치적 동지라는 특수 관계다. 그런 세 사람이 뭉쳤으니 적어도 여권 내에선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오·송·김 단체장 트리오는 전방위적인 여권 내 정지작업에 돌입했다. 특히 김 지사는 최근 당·정·청의 핵심 정책 관계자들을 만나 김해 신공항 불가론을 역설하고 있다. 신공항 문제를 단순한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해 명분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전 정책위의장)은 “김경수 지사가 찾아와 쭉 신공항 문제를 설명하고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왜 다시 꺼내나’라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 대구·경북 입장만 달라졌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해 신공항 백지화 문제를 논의한 적 있나.
“지금은 얘기할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다만 국토부와 대화로는 이 문제의 결론을 내기 어렵겠다고 판단해 총리실에서 이 문제를 검증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낙연 총리와 깊이 있는 대화는 나누지 못했으나 합리적이고, 민심을 깊이 고려하는 분이니 이 문제를 진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신공항 문제를 총리실로 이관시키려는 것은 국토부의 손을 떼게 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김해 신공항 건설이란 기존 입장을 번복하기 어려운 국토부, 반대로 김해 신공항에 반대하는 지역 여론을 감당해야 하는 오 시장에게 모두 총리실 검증위원회의 ‘최종결정’이란 출구가 필요하다. 국토부나 오 시장이나 최악의 경우 “할 만큼 했는데, 최종 결정이 저러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총리실 입장에선 지금 난제 하나가 다가오고 있다. 이 총리가 검증위원회 구성 요구를 받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결국 총리실에 검증기구가 뜨느냐, 마느냐가 이 문제의 1차 분수령이 될 것이다. 총리실에 검증위원회가 뜬다면, 신공항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된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