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당권 도전 시동 건 ‘공안 보수’ 황교안의 이색 동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다음 달 27일 열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사실상 출마를 확정하면서 야권이 요동치고 있다. ‘황교안’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공안’이다. 지난 21일 대구를 찾은 황교안은 “대여 투쟁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사람이 누구냐. 그 말씀으로 대신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황교안이 공안 검사 시절 사형을 구형했던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주역 김현장(69)과 친분을 맺고 정치적 조언까지 들어온 사실이 확인됐다. 김현장은 황교안에게 한국당 입당→당권→대권 도전이란 3단계 로드맵을 제시하며 출마를 강력히 권했다고 한다. 그를 21일 만났다.
황, 89년 피의자 김에게 ‘사형’ 외쳐 #출소뒤 김이 조문전화 걸며 교분 터 #박근혜 청와대서 조우 ‘특별한 인연’ #김, 황 사무실 찾아 ‘정치하라’ 설득 #입당 → 당권 → 대권 3단 로드맵 제시 #황 “김, 우리 헌법 가치 확고히 존중”
-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사람의 정치적 멘토가 됐다. 사연이 궁금하다.
- “황교안을 처음 만난 건 내가 1989년 전민련 국제협력위원장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출소 6개월 만에 재구속됐을 때였다. 남산 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에서 20일 넘게 고문받다가 검찰로 넘겨졌는데, 담당 검사가 황교안이었다. 분위기가 안기부 요원들과는 확 달랐다. 존댓말을 쓰며 사람으로 대해줬다. 내게 사형을 구형할 때도 부끄러워하며 낯을 붉히는 모습을 보였다. ‘깨끗한 검사’란 느낌이 들었다. ”
- 그 뒤로 어떻게 됐나.
- “93년 석방 직후 황교안 모친상 부고를 접했다. 바로 전화해 ‘오늘이 발인인데 (못 가봐) 죄송하다’고 했다. ‘전화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더라.”
- 그때 전향한 것인가.
-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민주화가 진전된 때였다. 이젠 내 투쟁 목표가 달성됐으니 증오심을 버려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황교안에게 전화도 한 거다.”
- 그 뒤로 황교안과 자주 만났나.
- “아니, 못 봤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발족시킨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 위원에 위촉돼 박 대통령이 주최한 연석회의에 나갔더니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 자격으로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더라. ‘오랜만입니다’고 인사를 나눴다. 이어 행사가 시작되자 내가 일어나서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양반이 옆에 있어 간땡이가 얼어붙어 말을 못하겠다. 여기 황 장관이 옛날 내 담당 검사였다’고 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됐다. ‘국민통합 다 되버렸네’라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박 대통령도 웃더라.”
- 그래서 어떻게 됐나?
- “황교안이 그날 자리를 뜨면서 명함에 개인 전화번호를 적어주더라. ‘한가하면 법무부를 찾아와 (직원들) 격려해달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 뒤로도 그를 본 적은 별로 없었다.”
- 그럼 언제 어떻게 친해진 건가?
- “그 양반이 통진당 해산을 성사시킨 걸 보고 ‘황교안 아니면 안 되겠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경기고를 나와 성균관대를 갔다. 그가 서울대 갔으면 (대통령감) 못됐을 거다. 그는 성대를 가서 처음 1년은 학교 안 가고 고민만 했단다. 인간 냄새가 나지 않나. 그가 검사를 하면서도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본 이유다.”
- 그래서 정치적 조언을 시작한 건가.
- “황교안이 2017년 5월 총리(대통령 권한대행)를 물러난 직후 전화를 했더니 ‘미국 갔다’고 하더라. 문자로 ‘잘했다. 사람 많이 만나고 오라’고 했다. 그가 귀국해 서초동에 사무실을 열고 2~3일 뒤 ‘오라’고 해서 갔다. 방에 가니 성경책 한권만 놓여있고 여직원도 없이 운전기사가 커피를 내오더라. 내가 ‘전국 방방곡곡에 한국당 찍겠다는 사람이 없다. 오직 당신이 나와야 찍을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 당신이 몸 던지면 나도 분골쇄신 돕겠다’고 했다.”
- 황교안의 반응은.
- “‘같이 고민해보자’고 하더라. 워낙 신중한 사람 아니냐. 그래서 나는 ‘내 권유를 안 듣겠다면 이민 가시라’고 했다. 난 그가 꼭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봤다. 계기는 통진당 해산이다. 그건 남로당 해산보다 더 힘든 일이다. 법의 수순 밟아서 해산시켜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 ‘반미 친북’이던 당신이 강경 우파로 전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 “주체사상은 초근목피에 시달리던 1920년대에나 맞는 이론이다. 그걸 지금 시대에 적용한다는 게 말이 되나?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홍순경씨가 대통합위원회 위원이 돼 나랑 만났는데 ‘공화국(북한) 영웅을 여기서 뵈네요’라며 놀라 자빠지더라. 김일성이 간부 회의에서 ‘김현장의 투쟁은 내 보천보 투쟁보다 더 영웅적’이라며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는 거다. 그뿐 아니다. 처음 공개하는데 그동안 저쪽(북한)에서 내게 우회적으로 많은 접근이 있었지만 다 거절했다.”
- 접근? 월북 권유를 뜻하나?
-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거기(북)서 영웅 노릇 하느니 대한민국에서 무기징역 사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그 뒤론 접근을 안 하더라.”
- 임종석과도 인연이 있나?
- “그 친구가 89년 전대협·서총련 의장 할 때 내가 축사를 해 준 사람이다. 그 친구가 표정이 밝아 (내 충고를)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주사파들은 책을 열권 이상 읽은 이가 없다. 읽은 책을 달달 외우고 ‘공부했다’고 한다. 세상을 보편적인 눈으로 볼 줄 모른다. 주사파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이들이다.”
- 그 뒤 황교안과는 어떻게 됐나.
- “수시로 그에게 전화해 옆구리를 쑤셨다. ‘당신이 검사할 때 사형 때린 사람이 대통령을 하라면 이유가 있는 거다.’라고 설득을 거듭했다. 용기가 생겼는지 (정치) 준비를 하더라”
- 정치적 조언을 해줬나.
- “우선 당권과 대권 중 뭘 도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아 ‘당권이 먼저다. 당권 가져본 경험 없이 대권에 도전할 순 없다’고 조언했다. 엊그제도 만났다. ‘솔직히 누구랑 허리띠 풀고 술 마시며 호형호제할 줄 모르지 않나’고 했다. 그러자 ‘왜 내가 못해’하며 웃더라. 그걸 보면 과거보다 많이 무뎌진 거로 봐야 한다.”
- 황교안이 당권을 놓고 겨룰 최대 라이벌은?
- “오세훈이다. 김무성·홍준표는 결국 오세훈으로 단일화할 것이다. 그래도 최종승자는 황교안이 될 거다.”
황교안 본인은 김현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물었다.
- 사형을 구형한 피의자와 친구가 됐다.
- "공안 검사와 피의자는 그렇게 적대관계가 아니다. 서로 토론하는 사이랄까. 김씨가 출소한 뒤엔 잊고 지냈는데 장관 시절 대통합위원회에서 옆에 앉게 됐다. 특별한 인연이다. 연락을 주고 받게 됐다.”
- 공안통인 당신이 반미 좌파 원조 격 김현장과 연을 맺은 의미는?
- "헌법의 가치에 대해 생각이 같은 사람은 언제든 같이할 수 있다.”
-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진보좌파를 포용해 외연을 확장하려는 전략인가?
- “진보적이니 그런 얘기보다는, 현시점에서 김 씨는 헌법 가치를 확고히 존중하는 입장이다. 그럼 쉽게 같이 할 수 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