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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창문 없는 한 평 원룸 살며 쓰리잡 뛰어도 희망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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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빈곤층의 피난처’ 고시원에서 만난 경제 난민들 

고시원에 고시생이 없다? '고시원의 메카'라는 서울 신림역 사거리 주변에는 고시 준비생이 아니라 이른바 '경제 난민'들이 북적댄다. 이곳을 비롯해 수도권 고시원(고시텔)에는 1997년 말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처리된 가난한 50·60세대만 있는 게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출현한 20·30 청년 빈곤층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라는 대한민국에서 월 20만원 정도로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고시원이라서다.
 최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7명 사망)를 계기로 빈곤층의 열악한 주거 여건이 사회 문제가 됐다. 수도권에 등록 고시원은 약 5800개 정도 있다. 고시원마다 약 40개의 방이 있다고 보면 대략 23만명(미등록 포함 시 50만명 추정)이 산다.

7명이 숨진 서울 국일 고시원 화재 생존자(맨 왼쪽)와 희생자 유가족들이 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고시원은 가난해서 갈 곳 없는 '경제 난민'들의 마지막 피난처 같은 곳이다.  장세정 기자

7명이 숨진 서울 국일 고시원 화재 생존자(맨 왼쪽)와 희생자 유가족들이 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고시원은 가난해서 갈 곳 없는 '경제 난민'들의 마지막 피난처 같은 곳이다. 장세정 기자

 저성장과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머지않아 다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경제 재난 때는 저소득 빈곤층이 받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단지 개인의 능력 차이와 실력 문제를 넘어 잇따른 경제 위기가 초래한 '사회·경제 구조적 가난' 때문에 희망이 실종되고 절망에 익숙해진 고시원 사람들을 만나봤다.
 서울 강서구의 W 고시원은 시설 수준과 방세 기준으로 보면 수도권에서 가장 평균적인 고시원이다. 약 85평 면적의 건물 한 개 층에 43개 원룸이 미로처럼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방 하나의 면적은 최저 3.3㎡(1평)이고 가장 넓은 방이 5㎡다. 창문이 없는 3.3㎡ 방은 월 20만원, 창문이 달린 5㎡ 방은 28만원이다.
 W 고시원의 경우 현재 32명(여성 3명 포함)이 살고 있다. 절반 정도는 하루 6만-7만원을 받는 공사장인부 또는 일용직들이다. 일반 직장을 다니더라도 대부분 월 200만원 정도 버는 것이 고작이다. 여성 중에는 유흥업소 종사자도 있다고 한다. 고시원 사람들은 빈곤의 동의어인 고시원을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버겁기만 하다. 1인칭 화법으로 서울의 고시원 거주자 세 명의 얘기를 들어보자.

숨 쉴 수 있는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이 있고, 셔츠가 걸려 있는 1평 짜리 고시원 내부. 김모(34)씨는 쓰리잡을 뛰어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연애도 결혼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숨 쉴 수 있는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이 있고, 셔츠가 걸려 있는 1평 짜리 고시원 내부. 김모(34)씨는 쓰리잡을 뛰어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연애도 결혼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①'쓰리잡' 뛰어도 가난 굴레 못 벗은 30대 김씨(34)
나는 창문 없는 3.3㎡ 원룸에 산다.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 벽에 셔츠가 3개 걸려 있다. 창문이 없어 답답해 죽을 것 같다. 벗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된다.
 IMF 당시 민영화된 모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하던 나는 대학을 마치자 귀국해야 했다. 군 복무 이후 2012년 부산에서 상경할 때만 해도 꿈이 있었다. 열심히 살면 내 방과 집이 생길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와서 보니 기댈 곳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파 피를 뽑아 팔아 햄버거 두 개와 바꿔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이렇게 7년째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다. 고시원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고시원 주인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사람도 봤다. 최근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 이후 담배를 유달리 심하게 자주 피우는 입주자는 쫓겨났다.
 나는 속칭 '쓰리 잡(three jobs)'을 뛴다. 모 기관에 다니는데 월급은 200만원 정도다. 그래서 영어권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온라인 강사 알바도 뛴다. 이것으로도 벌이가 부족해 법정에서 영어 통역사로도 일하는데 둘 다 고정수입이 없다. 부산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 생활비(매월 약 70만원)를 보내드려야 하므로 혼자 사는데도 저축할 엄두가 안 난다.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조금만 늦어도 고시원 옆방 사람들이 몰려들어 샤워실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시원에서는 매일 아침 6시를 전후해 화장실(2개)과 샤워실(3개) 쟁탈전이 벌어진다. 달동네 공동화장실처럼 길게 줄을 서야 한다.

1평 짜리 고시원 내부는 두 다리조차 뻗지 못할 정도로 비좁았다. 3040들은 이곳에서 한숨을 쉰다.

1평 짜리 고시원 내부는 두 다리조차 뻗지 못할 정도로 비좁았다. 3040들은 이곳에서 한숨을 쉰다.

 매일 오전 5시 30분 지하철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 잠이 너무 부족해 임산부용 배려석(핑크 카펫)에 앉아서 잘 때도 있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파김치처럼 지친 나에게는 사치스런 매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가 집안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한다. 단순히 능력이나 의지만 갖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빈부 격차도 극심하다. 고시원에는 나같은 빈자들이 몰려와 전전한다. 겨울엔 난방도 미지근하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최하층 젊은이라는 자괴감이 든다. 7년간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한 번도 일터에 지각하지 않았고 죽도록 일했지만 내 삶은 바뀌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과 싸우지도 않고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법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나도 이제 30대라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적어도 계층 사다리는 만들어 주고 일어설 기회는 줘야 하지 않나. 가난한 이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위축되다 보니 연애와 결혼은 꿈도 못 꾼다. 내일은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기대도 없다. 차리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IMF 때 부도로 고통받은 박모(59)씨는 서울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 때 가까스로 생존했다. 그는 "경제위기의 피해는 화재와 비교할 수도 없다"며 두번 다시 경제위기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IMF 때 부도로 고통받은 박모(59)씨는 서울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 때 가까스로 생존했다. 그는 "경제위기의 피해는 화재와 비교할 수도 없다"며 두번 다시 경제위기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②고시원 화재 때도 살았지만, 경제위기 불안한 50대 박모(59)씨
1997년 이맘때 부산에서 수산업을 하다 IMF 와중에 회사가 부도났다. 당시 선박 네 척에 선원 등 직원만 약 130명이었고 연 매출도 32억원이나 됐다. 하지만 국가 부도 사태는 지방의 한 중소기업인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고 현금이 돌지 않으면서 '돈맥 경화'가 일어났다. 재기를 위해 이듬해 굴비와 오징어 유통 합작회사를 중국 측과 만들었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아 5년 만에 그만뒀다. 정부로부터 받은 선박 융자와 은행권 채무 등 IMF 부도 때 생긴 채무 15억원(이자 제외)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나를 괴롭힌다. 부채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은행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환멸을 느껴 2003년 고향(경북)으로 낙향해 10여년간 농업과 수산물 판매업을 하다 지난해 초 재기를 위해 상경했다. 건강식품 판매로 월 150만~200만원을 벌며 근근이 생활하던 중에 국일 고시원에서 화재를 당해 그나마 일을 못 하고 있다. 월 5만원을 더 주고 창문 있는 고시원 방에 묵었기에 그나마 가스관을 타고 탈출해 살았다.
소방의 날(11월 9일)에 난 화재에서 살아남은 나는 11월 9일을 다시 태어난 '제2의 생일'로 삼기로 했다. 그런데 내년에 경제위기가 또 올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들었다. 돌이켜 보면 화재 참사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경제위기다. 청와대 사람들 중에 자기 힘으로 뼈 빠지게 돈 벌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되나. 정치인들은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큰소리나 친다. 다시는 경제위기가 터지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제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7년간 고시원에 살면서도 재기 의지를 버리지 않은 금융인 출신 이상돈(63)씨. 그는 '경제 난민'들이 몰려사는 고시원의 화재 안전을 위해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가 제대로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역설했다.

7년간 고시원에 살면서도 재기 의지를 버리지 않은 금융인 출신 이상돈(63)씨. 그는 '경제 난민'들이 몰려사는 고시원의 화재 안전을 위해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가 제대로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역설했다.

③IMF와 금융위기 이후 빚 갚으며 청춘 다 보낸 60대 이상돈(63)씨
서울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74년 유명 시중 은행에 첫발을 내디뎠다. 나는 은행이 망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24년간 은행원으로 일했고 그중 12년간 여의도 금융가를 누볐다. 월급의 3배를 받고 신설 은행에 스카우트 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국가가 사실상 부도났다. 지점장으로 일하던 98년 말 은행 합병 와중에 졸지에 명예퇴직 처리됐다. 실업급여도 못 받았다. 도리어 부실대출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10억원 정도를 물어내야 했다. 중소기업 지원 잘한다고 상을 주던 은행이 뒤늦게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 잠실의 이름난 중산층 거주 아파트에서 넉넉하게 살았다. 하지만 명퇴 이후 아파트와 땅까지 처분했다. 강북의 달동네로 이사하니 그동안 '골프 치던 강남 사모님'으로 살아온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다.

7년째 고시원에 사는 이상돈 씨가 쓴 '고시원 사람들'(바른북스)과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한 김동원 고려대 교수의 '대불황의 시대-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미래의 창).

7년째 고시원에 사는 이상돈 씨가 쓴 '고시원 사람들'(바른북스)과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한 김동원 고려대 교수의 '대불황의 시대-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미래의 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듬해엔 설상가상으로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IMF 이후 소규모 건축회사 대표로 일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건물 주차장 공사를 맡았던 후배가 공사 대금 중 6억원을 들고 잠적했다. 빚과 세금 등 6억원이 내 책임이었고 급기야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나를 악덕 건축업자로 모는 바람에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고 책임감을 느껴 어쩔 수 없이 2009년에 집을 나왔다.
 편의점 알바, 군밤 장수, 부동산 중개소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2013년에는 과로로 몸이 망가졌다. 북한산으로 갔다가 문득 이대로 죽을 게 아니라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하고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나를 다시 살려준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산이었다. 정부는 나에게 패자부활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기초생활 수급자 김모(60)씨는 "복지국가라는 문재인 정부의 지원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기자

기초생활 수급자 김모(60)씨는 "복지국가라는 문재인 정부의 지원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기자

 힘들 때면 딸들이 격려를 해줬다. 특히 막내딸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아빠 최고야, 아빠 사랑해"라고 응원해줬다. 막내딸에게 미안해서 대학 공부는 아빠가 반드시 책임지겠다고 결심했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월 150만원을 딸에게 보내줬다. 간절하게 보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2009년부터 7년간은 보고 싶은 딸 얼굴도 못 봤다.

수도권 빈민들의 피난처된 고시원 #월20만원으로 비바람과 추위 피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타격 받은 #5060뿐 아니라 2030도 몰려들어 #창문 없는 원룸서 희망 잃고 좌절 #헌혈해 햄버거로 끼니 때우기도 #저축도 연애도 결혼도 엄두 못내 #패자부활전도 계층사다리도 없어 #이러다 경제위기 또 올까 걱정 #경제 구조개혁으로 위기 막아야

 나는 2011년부터 7년째 고시원에 산다. 지금도 고시원 관리를 도와주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4.7㎡ 원룸에서 잠을 잔다. 국일 고시원 화재 이후 불이 날까 매일 밤 노심초사한다. 불에 잘 타는 합판으로 벽을 만든 원룸은 벌집 구조라서 화재 시 탈출이 어렵다. 그래서 "고시원에 불나면 다 죽는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가 보조금이라도 준다면 완강기를 2~3대는 설치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고시원 관리원 등 두세가지 일을 하며 월 300만원 정도를 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빚 갚다가 청춘을 다 보냈다. 건축회사 법인 대표 자격으로 체납된 세금 중에 아직 1억원이 남았다. 그나마 나는 가난의 수렁에서 90% 정도는 벗어났다.

서울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내걸린 서울시의 공공주택 홍보 간판. 고시원에 거주하는 '경제 난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탑방 쑈'를 할 게 아니라 고시원에서 하룻밤만 자보라"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서울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내걸린 서울시의 공공주택 홍보 간판. 고시원에 거주하는 '경제 난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탑방 쑈'를 할 게 아니라 고시원에서 하룻밤만 자보라"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나는 촛불 시위에도 참여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 봤는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을 보니 현 정부의 포퓰리즘이 심해 보인다. 다시는 위기가 오지 않도록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3의 위기가 또 올 수 있다고 본다. 가난한 국민 힘든 것도 모르고 남북관계에만 너무 치중하는 것은 문제다. 내치와 민생 경제가 우선이다.
 고시원에서 만난 ''경제 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위기가 오지 않도록 정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불황의 시대,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가(미래의 창)』를 쓴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위기를 막으려면) 장기 침체와 저성장의 늪을 돌파하는 구조개혁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포스터가 서울 시내버스에 나붙었다. 영화의 배경은 IMF 위기다. 조만간 또다른 경제위기가 올 거라는 루머에 고시원 사람들은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장세정 기자

28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포스터가 서울 시내버스에 나붙었다. 영화의 배경은 IMF 위기다. 조만간 또다른 경제위기가 올 거라는 루머에 고시원 사람들은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장세정 기자

 28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IMF 위기가 시대 배경이다. 여주인공 김혜수는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IMF 위기를 겪으면서도 (당시에는) 잘 몰랐던 사실을 영화를 찍으면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의 깨달음처럼 국가 부도라는 경제 위기는 두고두고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재앙은 뒷수습보다 막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당장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또다시 위기로 내몰릴 수도 있다. 또다시 국가의 경제 실패가 개인의 삶을 '희생양' 삼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혜원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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