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공짜 식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의 생일인 지난 9월 2일. 청와대 춘추관(기자실 건물) 구내식당에는 미역국 .갈비찜 등의 점심식사가 공짜로 제공됐다. 구내식당의 정가는 2천원이다. 닷새 뒤인 7일. 盧대통령이 춘추관을 전격 방문해 상추쌈.제육볶음 등을 찬으로 기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盧대통령이 취임 이후 출입기자들에게 밥을 산 것은 이렇게 딱 두번이다. 당시 기자는 개인적 이유로 두 차례의 공짜 식사를 '얻어먹지'못했는데 지금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자문위원 초청 다과회에서 盧대통령이 "밥 얻어먹고, 기사 쓰고 해선 안된다"고 말한 것을 접하자 스친 생각이다.

이날 盧대통령은 "기자들이 사무실을 무소불위로, 마구잡이로 취재해 일을 방해해선 안되고, 일하는데 서류 뺏고 그래선 안된다"고도 했다.

盧대통령이 기자들을 술.밥이나 얻어먹길 바라고, 서류를 강제로 빼앗는 존재로 묘사한 건 처음이 아니다. 물론 盧대통령이 강조하려는 취지는 안다. 그러나 제시한 사례에는 공감할 수 없다. 한마디로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다.

제시한 사례가 적합하지 않으면 전달하려는 취지도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어떤 언론사의 어떤 기자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밝혔으면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일반화.현재화해선 안된다.

다수 기자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렇다. 더욱이 盧대통령이 "신문은 재미로 봐야 한다. 나도 재미로 가끔 본다"고 한 대목에선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절망감 같은 걸 느낀다.

많은 기자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밤을 새워가며 만드는 신문이다. 재미로만 보라고 만드는 신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재미없는'청와대 얘기들을 전할 이유도 없다.

강민석 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