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기부천사 '청년 버핏'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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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찰청. [중앙포토]

대구경찰청. [중앙포토]

대학수학능력 시험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해 거액의 자산가가 됐고, 그 돈으로 장학금을 내는 등 꾸준히 이웃을 챙겨 '청년 주식왕', '청년 버핏'이라는 별명을 얻은 A씨(35). 하지만 얼마 후 그의 주식 투자 배경과 수익금 규모가 과장됐다는 사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밝혀져 비판의 대상이 됐고, 결국 A씨의 이름과 선행은 사라져버렸다.

최근 사기혐의 등으로 피소 #"13억여원 돌려주지 않아"

최근 A씨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투자 관련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대구경찰청 측은 27일 "지난달 말 대구 성서경찰서에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장이 접수돼 30대 A씨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를 고소한 B씨는 고소장을 통해 "2016년 30% 투자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13억 9000여만원을 A씨가 여러 차례에 나눠 받아가고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며 경찰은 전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A씨를 최근 불러 고소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그는 경찰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빌린 일부 차용금이다. 갚을 의지가 충분히 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직접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수수한 차림으로 경찰서에 나와 조사에 임했으며,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며 "현재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A씨는 2013년 초 언론을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가 재학 중인 대학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다. 평범한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거액의 장학금을 낸 사실은 세간의 관심을 끌만 했다. 2015년 초 그는 한 번 더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번엔 기부액이 4억5000만원(5년 약정)으로 늘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학 입학 후 과외 등 아르바이트로 번 1000여만원으로 10여년 만에 주식 등 투자로 거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청년 버핏'이라는 별명이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재력 자랑하던 '청담동 주식부자' [연합뉴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재력 자랑하던 '청담동 주식부자' [연합뉴스]

이후 그는 다른 대학에도 장학금을 기부했다. 사회단체 등을 통해 불우 이웃 돕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A씨는 그해 7월 대학생 신분 최초로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듬해엔 미국 포브스지의 '2016 아시아 기부 영웅'에도 이름을 올렸다. 청년 주식왕에 기부천사 이미지까지 생긴 그는 시교육청 토크콘서트 등에 나서는 등 강연자로도 활동했다.

2017년 하반기 그는 모교에 5년간 장학금 13억5000만원을 새로 기탁기로 했다. 학교 측은 아예 별도의 장학기금을 만들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A씨는 당시 기부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세월호 이야기를 했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사고 때 진도와 안산을 찾아 살신성인한 사람들 얘기를 현장에서 듣고 많은 걸 느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모아둔 수익의 일부를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학금은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고마움과 존경의 표현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얼마 후 한 주식 전문가가 10년 만에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처음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불쾌해하던 A씨는 결국 "지금까지 주식으로 번 돈이 14억원 정도"라며 주식 수익 규모 등이 과장된 사실을 인정했다.

A씨는 논란 후 학위 취득 없이 학교에서 나온 뒤 강연, 기부 등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최근까지 1년 이상 사실상 잠적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게 돈을 투자하는 식으로 건넨 이들이 더 있다는 진술이 있어, 조사를 진행 중이다"며 "하지만 아직 직접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을 하겠다는 피해자가 없고, 추가 고소하는 케이스도 없다. 전체 금액 규모나 향후 수사 과정 등은 아직 발표하기 이르다"고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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