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국회 본청 223호에서 만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2017년 7월 11일 ‘포스트 심상정 체제’를 이끌 당 대표로 선출된 후 쉬지 않고 달려왔다. 2년 임기 종료 시점을 6개월 앞둔 이 대표의 가장 큰 숙제는 4ㆍ3 보궐선거에서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성산을 사수하는 일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 역시 이 대표와 정의당이 사활을 거는 부분이다. “만약 당 대표를 연임하면 과로사할 것 같다”는 이 대표를 밀착마크 했다.
- 창원 성산에서 필승하려면 민주당과의 단일화 가능성 열어둬야 하는 것 아닌가.
- 정의당이 자유한국당을 자력으로 뛰어넘는 것이 상수다. 단일화가 꼭 필요하다면 정의당으로 단일화하는 그 길 하나밖에 없다. 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면 민주평화당과의 공동교섭단체 복원을 최우선적으로 해나갈 것이고 그 속에서 개혁동력을 다시 만들어 나가겠다.
- 노회찬 전 의원 사후에 두자릿 수까지 치솟았던 당 지지율이 정체기를 맞은 이유는.
- 국민들은 한꺼번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진 않는 것 같다. 지금은 5석 미니정당이기 때문에 존재감을 더 확실히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창원 성산에서 이기면 저희 실력을 좀 더 인정해줘야겠다, 2020년 총선에서 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하도록 더 지지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 노회찬, 심상정을 이을 스타 정치인이 진보 정당에서 또 나올 수 있을까.
- 사실 스타로 클 수 있는 그라운드가 너무 작다. 당 대표로서 그것을 확장시키고 거기에 준비돼 있는 많은 정치인들을 올려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임무다.
- 스스로를 스타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나.
- 반(半)스타? 스타인듯 스타아닌 스타같은 너. (웃음) 이정미가 누구인지 좀 관심이 생겨서 보기 시작한 단계 같다. 총선에서 재선을 한다면 진정한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한국외대 84학번인 이 대표는 우연히 대학 선배를 통해서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을 알게된 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등록금 문제 등으로 1학년 2학기에 휴학을 했다가 결국 중퇴했다. 1988년 인천 영원통신에 입사하면서 노조 결성 등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2012년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 모두 참여했고 최고위원, 대변인 등을 지냈다. 부정경선 사태가 터지자 통진당을 탈당해 2012년 10월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만든 게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이다. 2016년 총선 때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020년에는 인천 송도에 출마해서 재선을 노린다.
- 2020년 출마 준비 중인 인천 연수을(송도) 분위기는 어떤가.
- 이정미와 딱 어울리는 지역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송도는 인천의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런 변화를 수용할 새로운 인물, 변화를 힘있게 끌고 갈 강한 정치인이 필요한 곳이다.
-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어떻게 평가하나.
- 나쁜 정권이었다면 그냥 그렇겠거니 생각했을텐데 국민들이 그 추운 겨울 거리에서 6개월 동안 촛불을 들어 탄생시킨 정부다. 이들이 요구한 건 기득권 세력 해체다. 20대 청년들이 좌절하는 가장 큰 이유도 기득권의 특권과 반칙 때문에 자신들에게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기득권 세력의 연합에 주춤거리거나 뒷걸음질치면서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놓는 방식으로 지금 이 정부가 운영되고 있는 거, 이게 너무나 안타깝다. 집권 3년차인 올해가 라스트 타임이다.”
이 대표가 요즘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슈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재판개입 의혹이다. 현 정부가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악재가 터진 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서 의원을 당 원내수석부대표직에서 사임시키고 국회 윤리특위에서 배제했다.
- 서영교 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조치, 적절했나.
- 자기 당 안에 사법농단과 연루돼 있는 국회의원 하나 처리를 못하는 당이 어떻게 사법개혁하자고 주장을 할 수 있겠나. 검찰이나 판사들이나 코웃음치지 않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 기준으로 서영교 의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판단하시면 된다고 본다.”
- 민주당을 탈당한 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는 아니더라도 공직자로서 이해충돌은 맞다고 보나.
- 손혜원 의원이 문화재를 너무 사랑하는 것 하고 국회의원이 그런 방식으로 문화재를 부흥시키는 것이 옳은가는 굉장히 별개의 문제다.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갖는 무게감에 대해 좀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정의당 창당에 참여했지만 지난해 결국 탈당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얘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전 “정치에서 멀어지고 싶다”며 정의당 평당원 신분을 정리했다. 이후 한동안 방송활동에 전념하다 지난해 10월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본인이 여러차례 부인하는데도 정계 복귀 및 차기 대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유시민 이사장의 정계 복귀 가능성은.
- 유시민 전 대표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사실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유 전 대표가 정의당을 나가지 않았을거다.
민주노총은 28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노동개혁 후퇴로 경사노위 참여가 어려워진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은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축으로서 역할을 해주기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 민주노총이 왜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나.
- 민주노총이나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도 못한, 노조조차 가질 수 없는 많은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비정규직 청년ㆍ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을 대변하기 위한 사회적 의제들을 가지고 경사노위에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된다. 그래야 좀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하방연대’, 자기보다 더 낮은 곳을 향해 가는 연대를 강화해야 될 때다.
- 민주노총도 하나의 기득권이 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일부 몇몇 대기업 노동조합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저도 상당히 안타깝고 또 비판받아야 될 부분들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노조 일들이 너무 ‘침소봉대’ 돼서 그것이 민주노총 전체의 모습으로 얘기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양당에 선거제도 개혁 합의를 요구하며 10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각각 20일 넘게 단식을 한 적도 있다. 이 대표는 “14년 전 청년일 때는 28일을 굶고도 펄펄 날아다녔는데 이번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선거제 개혁’ 요구 위한 투쟁 방식, 단식이 최선이었나.
- 정의당이 작은 정당인데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결국은 정쟁 속에 다 파묻히게 된다? 그러면 꽥 소리라도 내야되는 거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의당 좋자고 하고 있는게 아니다. 거대양당 제도가 정치를 얼마나 망가뜨려 왔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시면 다당제 구조를 정착시켜야 될 필요성을 느끼실 거다.
“내년 4월이 총선인데 올해 선거제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전망도 심심치 않게 들려 온다. 이 대표는 “한국당이면 모를까 민주당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집권여당이 자기 공약을 죽기살기로 관철시키려고 노력해도 부족한데 ‘이거 어차피 안 될거야’라니…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보다 민주당 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더 중요한 건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