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되는 부산 청십자 의료보험|영세민 건강지키기 "2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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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내 의료보험의 효시인 부산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이 7월1일 전국민의료보험실시에 따라 21년만에 해산한다. 68년 국내최초의 민간의료보험조합으로 설립된 부산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 이젠 조합원 22만2천명, 지정병원이 4백83개에 이르는 민간의료보험조합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우뚝 서왔다.
부산 청십자 의료보험이 세워진 것은 정부의 의료보험제도시행보다 9년이나 앞선 68년5월13일.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 받자』가 캐치프레이즈였다. 6·25때 평양서 부산으로 피난, 영도에서 복음병원(현 고신의료원) 을 운영해 오던 장기려박사(78) 가 부산지역 기독교 성경연구모임의 멤버였던 채규철씨(59) 로부터 덴마크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성경연구 「부산모임」회원 몇 명과 뜻을 모아 조합을 결성했다.「청십자」라는 명칭은 1929년 미국텍사스주 베일러대 「킴벌」부학장이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직한의보조합의 이름에서 따왔다. 장박사는 자신의 복음병원에 청십자 의보조합을 설치하고 부산시내 1백여개 교회 신자·가족 7백23명을 가입시켰다.
첫 해 회원수는 1천6백62명에 불과했다.
의료보험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전혀 없던 때인데다 규모가 작아 큰 난관에 부닥쳤다.
조합원 1인당 월 60원씩 낸 첫 달 보험료는 1주일만에 환자 2명의 치료비로 바닥이 나버리는 등 초창기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69년 4월 스웨덴 아동보호재단의 사회복지부장 김영환씨(7·현 청십자의료보험조합사무국장) 의 협조로 이 재단의 원조를 받는 1만3천명을 일시에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회비도 80원으로 올려 한숨을 돌리게 되었지만 적자를 면하지는 못했다.
74년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이 「청십자」의 뜻을 이해하고 변두리 영세민 5천명을 가입비 50%, 회비 50%를 부담하면서 한꺼번에 회원으로 가입시켜준 데다 김사무국장 등이 각 가정을 방문,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등에 힘입어 회원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 75년엔 조합원이 2만명선에 이르렀으나 적자가 누적돼 해체위기를 맞기도 했다.
75년 후원자들로부터 5천만 원을 기부 받아 조합의 모범원인 청십자병원을 수정2동 79의 786에개원, 만성적인 진료비 체불을 면하면서 조합은 자립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77년 1종 의보실시와 함께 많은 직장인들이 조합에서 빠져 나갔지만 조합은 흔들리지 않았다.
80년대 들어 상호부조적 의료보호제도의 필요성을 느낀 영세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줄을 이으면서 회원수가 급격히 늘어나 81년엔 조합원이 4만1천8백28명으로 불었고, 재정도 5천여만 원의 흑자까지 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조합사무실 확장에도 나서 81년 6월 동래지부를 설치한데 이어 85년까지 매년 지부 1개씩을 늘려 모두 5개의 지부를 설치했다.
가장 어려운 보험료 징수도 자진 납부율이 95%를 웃돌고 있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다 조합의 알뜰 운영 등에 힘입어 지난해엔 15억원 이상 흑자를 기록했다. 현재 적립금 30억원과 병원 등 종합자산이 40억원. 그 동안 보험혜택을 본 진료연인원은 3월 현재 7백88만9천명에 이른다.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6월 30일 해체되지만 자매기관인 한국청십자 사회복지회가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기금을 받아 「진실 사랑 협동」의 청십자 운동을 계속 추진해나가게 된다.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지난해 6월23일 제65차 운영위원회에서 청십자 의보해산 이후 잔여조합재산으로 본인 부담금을 위한 의료비공제사업과 청십자 병원확장, 청십자 신용협동조합과 청십자 소비조합의 지원사업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이에 따른 제반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의료비공제사업은 조합원 15만명가량을 수용, 매월 1천5백원의 공제료를 납부하면 병원진료시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의 일정부분을 공제해주는 사업.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6월까지 조합원으로 남아 있다가 의료비공제조합에 가입한 회원에겐 2개월분의 공제료를 면제해 줄 방침이다.
장박사는 『국민 건강을 위해 진실 사랑 협동의 청십자정신을 실천했다는데 만족하자』는 말로 청십자 의보조합 관계자들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전국민의료보험실시를 위한 도시의보 시행을 반겼다. 【부산=강진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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