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비평 - 음악] 한국에도 작곡가가 있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0호 31면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12살 소년에게 나를 작곡가라고 소개했더니 놀라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작곡가들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독일의 한 현대음악 작곡가의 경험담이다. 이처럼 ‘작곡가’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를 떠올리며, 지금도 누군가 예술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더욱 그렇다. ‘한국의 작곡가’ 하면 우리는 누구를 생각할까?

음악은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며, 현대음악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기에 중요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한국의 작곡가들에게 무관심하다. 예술음악이 대중음악에 밀리고, 예술음악 중에서도 친숙한 조성음악에 밀린 ‘동시대 현대 음악’은 대중에게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눈 자리가 지난해 말 11월 27일에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렸다. 한국작곡가협회가 ‘한국 창작음악,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어 작곡가들과 음악학자들이 함께한 토론의 장을 펼친 것이다. ‘과연 한국의 첫 작곡가는 누구인가’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의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활동을 되돌아보며 비판적 시각에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문화 비평 1/26

문화 비평 1/26

우선 ‘한국 작곡가’들의 실체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협회에 등록된, 살아서 활동하는 작곡가 수가 600여명이며, 24개의 산하단체가 매년 다양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작곡가들이 존재하며, 예상 이상의 많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곡가가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음악학자와 함께 만나, 창작 음악에 대한 비평 담론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본격화한 점에서도 이번 심포지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작곡가는 어떤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가? 작곡가협회가 산하단체의 대표작을 추천받아 연 4~5회 개최하는 ‘대한민국 실내악 제전’을 되돌아보면, 최근 한국 현대음악의 경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지난 6월에 연주된 이강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해금과 가야금을 위한 분산’은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각각의 정체성을 보존·화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웅장하면서 날카로운 사운드와 극도의 미세한 음 진행 속에서 “세계는 황폐해졌고, 신들은 떠나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된 지금의 시대에 사물과 자연 그리고 인간 본연의 충만함”(비평가 원유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날 연주된 남상봉의 실내악 5중주 ‘태엽장치 장난감’은 기계적인 리듬의 경쾌한 진행과 미묘한 음색의 대비를 통해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현대의 청중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였다. 11월에 연주된 임승혁의 ‘피아노와 라이브 전자음악을 위한 테 te’는 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 사운드를 바흐의 대위법 형식으로 결합시키며, 강렬한 음향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서 “사물들이 함께 만나는 관계들에서 생기는, 전체 현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아도르노식 성좌”(비평가 손민경)를 읽으며, 우리는 음악이 추구하는 사유의 세계에 한발 다가설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자신의 강렬한 이야기를  분출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작곡가) 볼프강 림(W. Rhim, 1951~)의 말이 왠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말한다: 나는 여기 있어.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들어봐! 네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해봐! 네가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 있어.”(1991) 우리도 이제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의 음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음악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고전 음악보다 더 강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