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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잡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강의 사진은 오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내면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경 중심가에 진입한 계엄군의 장갑차 앞에 대학생들이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어디 지나 갈 테면 지나가 보라는 시위다.
아직은 그 장갑차가 움직였다는 외신은 없다. 데모 군중들은 강갑차 뿐 아니라 경찰들의 진입도 가로막았다. 서로 손에 손잡고「인간사슬」을 지어 방벽을 치고 있다.
3년 전 필리핀 사태 때도 그랬다.「마르코스」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라모스」 「엔릴레」 지지 군인들과 친정부군은 숨막히는 대치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아차 하는 순간이면 양쪽은 총격을 퍼부어 일대 살육전이 벌어질 형국이었다.
바로 그 사이를 가로막고 인간방벽을 친 것이 대학생들과 수녀, 신부, 그리고 시민들이었다. 결국 어느 쪽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말았다.
그때 이런 얘기도 있었다. 「엔릴레」 국방상이 「마르코스」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은 가까이 아들, 딸의 간곡한 호소에 힘입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저는 「마르코스」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국민의 의사를 속이기 위해 어쩌면 그렇게 비열해 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회가 왔는데도 진실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세대가 그와 같은 비열한 행동을 모방하고서도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들은 필리핀이나 중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미얀마에서도 있었다. 물론 버마는 장갑차가 군중들을 무참히 밀어붙이는 비극을 연출하고 말았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쓴 시민들의 저항은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계엄군은 며칠을 두고 북경 변두리에 머무르면서도 군중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군중이 무서워 그런 것일까. 그 보다는 세계의 이목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유혈이 낭자한 중국의 모습이 그대로 세계에 노출되는 상황을 말이다. 중국 권부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우리는 지금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 끝, 어느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도 덮어둘 수 없는 것이 오늘의 매스컴 문화다. 분명 옛날과는 다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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