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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초계기 대응 안할것 같다" 이말 20분뒤 뛰쳐나간 국방장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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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3일 오후 2시 국방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일본이 논리적이나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주장을 뛰어넘을 수 없으니 출구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일본 방위성이 “한국과 실무협의를 중단한다”고 발표에 근거해 일본이 ’초계기 논란‘의 이슈화를 당분간 접은 것으로 판단한 모양새였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초계기 논란에 대한 검증을 일본 측에 계속 요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계속했지만 일본이 응할 것 같지 않다.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했다는 정도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국방부도 일본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가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절제된 가운데 대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발언이 나온지 20분도 안 돼 정 장관이 당국자의 귀엣말을 듣고 오후 2시 40분쯤 갑자기 자리를 떴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가 해군 구축함 60m 위로 날아간 사실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일본 초계기, 한국 해군 함정에 저고도 근접위협비행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방부]

일본 초계기, 한국 해군 함정에 저고도 근접위협비행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방부]

‘일본의 출구전략’을 언급한 국방장관이 일본의 근접 위협비행 보고를 받고 간담회장을 빠져나간 코미디같은 23일 상황을 놓고 국방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일본의 근접 위협비행을 규탄하는 입장을 당초 정 장관이 직접 발표하려고 했지만, 또 갑자기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으로 바꿨다. 또 당초 입장문에는 ’자위권적 조치를 포함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실제 발표에선 이 대목도 뺐다.

정부 소식통은 “국방부가 지난 21일 일본 방위성의 발표를 사실상 로키(low-key) 전략으로 간주하면서 스텝이 꼬인 듯하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방위성의 ‘실무협의 중단’ 발표를 ‘이슈화 중단’으로 여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방부는 일본이 한ㆍ일 갈등을 우려하는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봤다고 한다. 정 장관의 ‘출구전략’ 발언은 이같은 내부 분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23일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8, 22일에도 일본 초계기가 근접 비행을 했다는 점에서 이를 알고도 일본의 전략을 오판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방부는 당시 일본의 근접 비행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군 소식통은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에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그쳤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주한일본무관을 초치해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항의한 지난 23일 나가시마 토루 주한일본무관이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국방부가 주한일본무관을 초치해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항의한 지난 23일 나가시마 토루 주한일본무관이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합참은 23일 앞으로 일본에 대해 강경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해군에 따르면 함정이 항공기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함장이 ▶추적레이더(사격통제레이더) 가동 ▶함포로 항공기 조준 ▶신호탄 발사 ▶경고사격 등을 할 수 있다.

만일 해군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이같은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이 국제 여론전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본의 연이은 도발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며  “일본은 자신들의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의 추적레이더 가동을 유도하려 한다. 한국이 무력 대응의 낌새를 보이는 건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국방 무관을 지낸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감정적 대응은 절대 금물”이라며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의 행위가 저공위협비행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알리고 재발방지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 모습(노란 원). [연합]

지난해 12월 20일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 모습(노란 원). [연합]

하지만 국민 여론이 격앙된 상황에서 군은 여론에도 민감해 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일본이 향후에도 초계기로 또 도발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해군이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경하게 나가면 일본의 수에 말리는 것이고, 그렇다고 지켜만 본다면 국내 여론의 비판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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