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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외무 입장 조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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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면 북측에서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전제로 했지만 "협상"이라는 언급이 처음 나왔다.

외교부는 21일 "유엔인권이사회 창립총회 참석차 제네바를 방문 중인 반기문 장관이 20일 오후 (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세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동북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현 단계에서 발사를 막기 위해 외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특히 반 장관은 미.일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 간 채널을 통해 북한에 미사일 발사를 자제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라이스 장관은 반 장관과 통화한 후 아소 외상과 통화했다. 그동안 한.미.일 3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진단과 대응에서 입장 차를 보여왔다. 정확히는 미.일의 강경 기류와 한국 정부의 신중론이 엇박자처럼 비춰졌다. 3국 외무장관 간 전화회담은 이 시점에서 공조 틀을 재정비할 필요성을 공감한 결과일 수 있다. 회담 후 3국에선 한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반 장관의 전화 통화에 앞서 관계 부처 간 논의가 있었다"며 "한.미.일 정부 간에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고위관리도 "한국 관리들과 협의한 바에 따르면 그들도 사태 전개에 우리만큼 놀라고 있다"며 "한.미 간 입장 차는 없다"고 말했다. 애덤 에럴리 국무부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사일 시험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북한에 크고 확실하게 전달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가 선호하는 행동 경로는 미사일 발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 "협상 통해 문제 해결하자"=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모라토리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은 조(북한).미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북한은 주권국가로서 미사일을 시험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차석대사는 "우리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의 대화가 단절돼 미사일 카드를 빼들었지만 북.미 양자 대화가 여전히 자신들의 요구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협상용임을 드러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런 만큼 미사일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 "대북 경제 제재 복원 검토"=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1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미국과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핵탄두 보유를 선언한 투명하지 못한 정권이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인 만큼 북한은 그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반대한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라며 "이는 매우 긍정적인 사인(sign)"이라고 평가했다.

또 미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경우 클린턴 정부 시절 완화했던 대북 경제제재를 복원하거나 재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가 21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기본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일부 해제됐던 제재조치들이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9년 9월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조치를 발표했으며 이 조치는 다음해 6월 공식 발효됐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일본 정부도 미국처럼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조총련 자금의 북송 제한 등 경제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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