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초한 구체성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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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6회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한 하근찬씨의 문학세계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공간인 6·25와 일제 말엽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이 두시대의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전쟁이나 역사의 흐름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골사람들이 겪는 수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쓰는 이야기들은 소년기와 청장년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허황되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성을 띠고 있다.
『6·25는 한민족사상 가장 비참한 사건이었고 두 이데올로기간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물론 여러 각도에서 다뤄질 수 있고 다뤄져야만 합니다. 저는 이 여러 각도중 제가 직접체험하고 목격한 부분만을 증언하듯이 써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저의작품을 젊은 작가들이 볼때 역사의식이 모자란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체험을 진솔하게 서술함으로써 구체성과 작가적 진실성을 획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작업이라 봅니다.』 하씨는 전쟁에 대한 분노나 역사의식을 모호한관념이나 혹은 명쾌한 웅변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식도 가질수없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을 내세워 그들이 겪는 전쟁의 수난을 정통적인 사실주의 묘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아니라 「작품」이 말하게 한다.
이번 수상작 『작은 용』또한 이러한 하씨의 문학세계에서 예외일 수는없다. 1950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회룡리라는 시골마을에서 겪은 공산치하의 6·25를 중심으로 그 전·후를 그리고 있다.
회룡리의 명물 마칠성은 엿장수로서 논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일밖에 모른다. 셋방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논일곱마지기를 사놓고 소작을 주며 스무마지기를 채우기 위해 장가도 안들고 엿장사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6·25가발발, 마을이 공산치하로 떨어지자 그의 논 일곱마지기는 몰수당한다. 이에 격분한 칠성이는 면인민위원회와 당사무실에 불을지르고 숨어지내다 수복을 맞이한다는게 기둥줄거리다.
약간 모자라는 마칠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칠성이의 입을 통해 작품에 개입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성취욕이 그것을 왜곡하는 제도에 맞서 어떻게 분출되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다.
『「작은 용」은 6·25 발발후 3개월동안 전북 산간마을에서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엿장수도 있었고, 등장인물들도 그때 그 마을 사람들을 모델로 했습니다.』하씨는 국민학교 교사와 잡지사 기자를 거친 사람으로서 체험하지 않은것은 소설화하지 않으려는 결벽증에 가깝다할 작가의식으로 소설을 쓴다.
이같은 소설에 대한 그의 결벽증 때문에 30여년의 문단생활에도 불구, 그는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과작의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1931년 경북영천에서 출생한 하씨는 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수난이대』가 당선, 본격적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뉠수 있다. 데뷔작『수난이대』부터 『나룻배 이야기』『흰 종이 수염』『분』『산울림』『붉은 언덕』등의 단편과 1971년 발표한 첫 장편 『야호』가 그의 1기 작품이다. 이시기에는 청년기에 겪은 6·25체험을 바탕으로 전쟁에 시달리는 시골사람들을 그렸다.
제 2기는 단편 『족제비』『일본도』등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일제말기의 대동아전쟁 시기를 어린시절의 회상형식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주요작품으로는 장편『산에들에』를 들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를 시기상으론 2기로 나눌수 있더라도 작품세계의 뿌리는 하나다.
곧 전쟁의 비인간성에 대한 치열한 항변이다.
그의 항변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튼튼한 사실주의적 묘사에 기반을 두고 어리숙한 시골사람들이나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세계가 전쟁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을 독자들에게 더욱 진폭시킨다.
『문단에 나오기 2년전인 1955년 고류주현선생이 주간으로 계시던 잡지「신태양」전국학생문예작품모집에 단편「혈육」이 당선됐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소설에 매달리다 34년후 그분의 문학상을 받게돼 기쁩니다.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한주제에 몰두해 온 고집에 준 상이라 생각하며 제갈길을 계속 가렵니다.』 등단한지 33년, 집필에 전념키위해 직장을 그만둔지 20여년에도 불구하고 50년대의 다른 작가들처럼 그 또한 수상경력은 미천하다. 「한국문학상」「조연현문학상」「악산문학상」을 수상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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