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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징계 판사들, 징계처분 취소 소송 제기

중앙일보

입력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난해 9월 12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난해 9월 12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정직과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판사들이 대법원에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법관들 "예정된 수순…징계 견디기 어려웠을 것" #"솜방망이 징계도 안 받겠다는 심보, 반성 없어" #"징계 절차가 부당, 수사·재판 종료 후 했어야"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법관징계위원회에서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은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은 이달 16일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대법원에 냈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민수 창원지법 부장판사, 문성호 남부지법 판사 등도 같은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 규칙에 따르면 법관의 징계처분 취소 소송은 본인에게 송달된 후 14일 이내에 제기할 수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예정된 순서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판사가 징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스스로 법원을 위한 일을 했고, 또 일부 젊은 판사들은 윗선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이행한 것일 뿐인데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하긴 했지만 ‘부적절한 소송 제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시키는 것을 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한다면 판사의 독립적 지위는 무엇이 되는 것인가”라며 “어떤 식으로든 판사의 독립성이 오염됐다면 징계를 달게 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밀했다. 또 다른 판사는 “징계 자체가 솜방망이였는데 이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판사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에 징계를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제적 판사’를 예단해 찍어버린 것”이라며 “징계는 수사와 재판이 모두 마무리된 후에 하는 게 정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징계가 확정되면 판사가 아니라 변호사로 개업할 때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며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법관 징계’는 선명한 주홍글씨”라고 말했다.

앞서 원정도박 혐의로 약식재판에 넘겨진 프로야구선수 오승환·임창용씨의 재판절차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견책’ 징계를 받은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대법원에 징계처분 불복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정직 6개월)와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감봉 5개월),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감봉 3개월)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취소소송 여부와 관계없이 징계처분은 그대로 집행된다. 이규진 부장판사는 최근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오는 2월 임기를 마치게 된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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