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변덕」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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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과 몇개월이 못가 언제 그랬냐는듯 말을 뒤집어엎는 정부의 정책발표로,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효과를 거둘수 있는 경제정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여러가지 여건과 과제를 감안해 길게 보고 정책목표를 세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닥치는 당면문제 해결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니 방향이 수시로 바뀌고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부동산가격을 잡아야겠다는 정책목표가 어느날 갑자기 온 하늘을 덮자 올초 건설부가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때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앞세웠던 수도권 신도시·공단조성 동결등의 수도권 팽창억제방침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고, 최근에는 상공부가 올 6월로 공업발전법에 의한 산업합리화지정이 끝나는 직물업종에 대해 다시 3년간 합리화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혀 지난해 10월25일 공업발전심의회 이후 정부가 여러차례 밝힌바 있는 합리화 지정연장 불허방침을 정면으로 뒤집어엎었다.
민영화를 위한 공개입찰에 막 들어가기 직전이었던 한중만 해도 이는 88년9월l6일의 경제장관회의 결정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원의 막판 뒤집기에 걸려 흔들리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거창하게 표방하고 나섰던 금융자율화는 그 정책을 위한 통화증발을 초래, 결국 통화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물리적 자금환수 조치로 기업자금난만을 초래했다.
총통화관리는 최근에 들어서야 통안계정해지·지준관리등의 간접규제방식이 가까스로 선을 보이기 시작한 단계이나 아직도 연초부터의 통화환수물결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것들이 아니다.
신도시개발계획의 경우 한가지 정책목표에만 온통 경도되면 지금 소홀히 했던 정책목표에 대한 대가는 언젠가는 꼭 다시 더 비싸게 치르고 넘어간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고, 직물산업의 합리화기간 연장은 「지역에 대한 배려」라는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합리를 덮어 누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관가와 업계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중민영화를 재고한다는 것은 경제장관회의의 신뢰도에 정부 스스로가 금이 가게 만든 것이며, 금융자율화건은 정부의 정책의지와 추진력을 충분히 의심하게 할만한 일이다.
물론 경제정책은 상황변화에 따라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만, 불과 몇개월도 못가 갈팡질팡하는 최근과 같은 신뢰성 없는 정책남발은 유연한 정책대응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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