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동고로 난세 극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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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 가뭄 끝에 때마침「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내린 단비는 5월의 신록을 더욱 빛나게 한다.
가뭄 뒤에 온 비를 우리는 자우 라고 한다. 목마른 온갖 생물들에 골고루 혜택을 주는 자우는 마치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의 마음과도 같다.
불법에서의 자비는「발고여악」을 의미한다.「 발고」라는 것은 인간생명에 잠재하는 고뇌의 근원을 뿌리 뽑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고는 이웃과 고통을 같이하는「동고」위에서만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 고뇌의 아픔을 자기 자신의 마음의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 위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동고가 없으면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정도 생기지 않고, 그 고통을 없애주려는 행동도 따르지 못한다.
남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동고의 감정은 다른 생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간직한 소중한 감정이다.
그러나 동고의 감정을 느끼더라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느냐가 문제다. 값싼 동정으로 나타난다거나 또는 집단적 이기주의로 표출된다면 그것은 이미 동고가 아니다.
마찬가지로「여악」은 글자 그대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악은 일시적·부분적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 도피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산다는 것 자체의 기쁨,「생의 환희」를 의미한다. 물론여기에는 물질적 쾌락도 포함되지만 보다 큰 생명 그 자체의 충일을 뜻하는 정신적 희열이 따르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바로 가뭄 뒤의 단비처럼 자비의 실천 없이는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연초 중앙일보는「함께 사는 이웃」을 연중 갬페인으로 제시했다. 산업화·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우리 사회가 점차 잃어가고 있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웃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는 자비의 실천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엄경』입법게품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모든 이웃을 섬기고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고 스승이나 성자와 같이 하라. 병든 이에게는 의사가 되어주고, 길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며, 어두운 밤에는 등불이 되고, 가난한 이에게는 재물을 얻게 하라』바로 자비의 실천 지침이다.
부처님은「중생이 곧 부처」라고 했다. 따라서 부처님의 오심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 져가는 이 부처님의 마음을 되찾게 하는데 있다.
오늘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고 위태로운 것은 우리들이 부처님의 마음을 잃은 때문이다.
미움과 노여움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웃의 고통은 외면한 채 자기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도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지혜의 마음, 자비의 마음을 되살리면 바로 부처님은 우리 마음속에 되살아 온다.
불기 2533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이웃」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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