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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경례·관등성명" 문건에...민망한 현대제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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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게시판,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출된 관등성명 문건. [사진 익명게시판]

익명 게시판,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출된 관등성명 문건. [사진 익명게시판]

현대제철이 신임 경영진 공장방문 행사 당시 작성한 이른바 '관등성명 지침' 문건이 유출돼 논란이다.

김용환(62)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11일 울산공장을 방문했다. 취임 후 펼치고 있는 현장경영 행사였다. 김 부회장의 울산공장 방문이 논란이 된 이유는 익명 게시판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퍼진 관등성명 지침 문건 때문이다. 문건에는 "경영진 현장경영이 예정돼 있으니 인사법을 숙지해 시행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사항이 포함돼 있다.

김 부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인사 때 현대제철 신임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총수 일가와 학연·지연 없이 1983년 현대차에 입사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사무직 직원에게 단체 인사법이라며 'VIP를 제일 먼저 본 직원이 부회장님 오셨습니다라고 외친다' '인원들이 모두 일어서면 담당자의 경례 구호에 맞춰 동시에 안녕하십니까 인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대제철 울산공장의 강관제조설비. [사진 현대제철]

현대제철 울산공장의 강관제조설비. [사진 현대제철]

특히 공장 직원에게는 'VIP가 다가오면 책임자의 차렷, 경례 구호에 맞춰 거수경례한다'는 지시사항이 포함돼 있다. 'VIP께서 악수를 청하실 때는 직급과 성명을 제창하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한다'는 내용도 숙지하도록 했다. 군대식 관등성명과 같은 방식이다. 이밖에 문건에는 '흡연 후 엘리베이터 탑승 금지' '사무실 정리정돈' 등도 포함돼 있다.

이에 현대제철 측은 평상시 마련된 매뉴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새로 바뀐 부회장께서 처음으로 공장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부서별로 대응방법에 대한 문의가 많이 온 것으로 안다"며 "문의가 많아 총무팀에서 대응 방법을 간단하게 이메일 형식으로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항상 준비하고 있는 일종의 평상시 지침(매뉴얼)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건을 접한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 현장은 한순간의 실수가 동료나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 규율이 강하다"면서도 "사무실 깨끗하게 하라는 지시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거수경례와 관등성명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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