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고위급 회담 요청에 침묵하는 북, 이번주 움직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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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 외신들은 베트남에서 2월중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회담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단, 이르면 이번주 성사 여부의 가닥이 잡힐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북ㆍ미 정상회담의 전초전 격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김영철 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겸)간 고위급 회담, 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간의 실무접촉과 관련해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답이 있지 않겠냐는 관측 때문이다.

"폼페이오 측이 제안...북한 구체적 일정 회신 안 해" #폼페이오-김영철 라인 가동, 2차 북미정상회담 가늠자 #김정은 위원장 방중 등 전략 짜느라 늦어졌을 가능성

【서울=뉴시스】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이 7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 중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났다. (사진출처=트 대변인 트위터) 2018.07.07

【서울=뉴시스】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이 7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 중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났다. (사진출처=트 대변인 트위터) 2018.07.07

13일 복수의 한ㆍ미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측에서 북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북한에 요청했다.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전후해 물밑 루트로 고위급 회담에 긍정적이라는 북한의 의사를 확인했지만 시기나 장소를 특정하진 않았다. 최근까지 구체적인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는 김영철 부위원장이다.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3개월 가량 멈춰 있는 상태다. 미국은 수 차례 대화를 요청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받지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워싱턴 조야에선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 10월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사실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5시20분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 10월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사실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5시20분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지난 1일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띄우면서 분위기는 반전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화답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화의 진전과 관련해 미국 실무 협상팀과 최고위층이 느끼는 온도 차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2차 정상회담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등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향한 북한의 ‘침묵’에는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지난 1일 신년사 작성 및 발표에 올인한 뒤 중국을 찾아 새로운 전략을 짜고, 그 결과를 토대로 미국에 접근하려다 보니 일정이나 전략상 미국에 답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7~10일)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 부터 북ㆍ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중국의 후견 역할을 약속받았다. 이제 든든한 보험을 들었으니 한국이나 미국을 향해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설 차례라는 것이다.

[中 인민해방군 사열받는 김정은-시진?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차 방중 소식을 10일자 지면에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8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는 모습. (노동신문)2019.1.10/뉴스1

[中 인민해방군 사열받는 김정은-시진?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차 방중 소식을 10일자 지면에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8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는 모습. (노동신문)2019.1.10/뉴스1

보수성향인 국익연구소(CNI) 해리 카지아니스 국장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북미 협상 구도를 중국을 포함한 다자 구도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외교 소식통은 “다음달에는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줄어들 염려가 있다는 건 북한도 잘 알 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의지가 있다면 이달 안으로 고위급 회담이 성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2월 중순 베트남을 제안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외교 당국은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회담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내부적으로 선호하는 장소를 정했을 수는 있지만 이는 실무협상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미측이 먼저 시기와 장소를 특정해 제안했을 가능성은 작다는 의미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만 “북미 정상 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기류는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며 “조만간 정상회담을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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