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판 '로미오와 줄리엣'… 합법적으로 같이 못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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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5세 동갑내기 신혼부부인 우사마 자타르와 자스민 아비사르는 '중동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린다. 신랑 자타르는 팔레스타인인이고 신부 아비사르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인근에 있는 한 동물보호소에서 만나 2004년 결혼했지만 그동안 함께 지낸 시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그것도 올 3월 아비사르가 남편이 사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라말라를 3개월 동안 특별 방문할 수 있는 허가를 어렵사리 받은 덕이다. 이스라엘 국민은 보안상의 이유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방문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치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은 2003년 만든 이스라엘의 국적.귀화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인과 결혼해도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합법적으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얼마 전 인권단체가 이들을 위해 위헌 심판 소송을 냈지만 최근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합법' 판결이 났다. 35세 이상의 팔레스타인 남자가 배우자 방문 목적으로 이스라엘을 단기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항이 지난해 마련됐지만 이 젊은 부부는 앞으로 10년을 더 기다려야 이스라엘에서 만날 수 있다.

아비사르는 2004년 결혼을 위해 유대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조각가인 남편과 라말라에서 함께 살며 어린이들에게 전공인 발레를 가르치는 게 꿈이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의 이주를 허용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현행법에 따라 라말라에서의 꿈같은 3개월을 기억 속에 품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한다. 아비사르는 "군 복무 등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다했는데 부부의 동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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