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메일을 못 받아도 소외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고,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입니다. 이따금 덕유산 소쩍새가 '번개'를 치면 지리산 소쩍이 그 소리를 받아 "야, 우리도 한번 뭉치자" 백운산 소쩍이에게 전하고요. 자연의 인터넷은 자살 사이트가 없는 정보화사회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지난 밤에는 피아골의 단풍나무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나, 절정이야, 혁명도 없이 희망도 없이 내 몸은 곧 절정이야'. 답장을 보내려고 자판을 칠 때마다 잎잎이 푸르던 날들이 붉게 물들고, 엔터키를 칠 때마다 성질 급한 낙엽들이 뛰어내립니다. 밤새 단풍나무 벗삼아 게임 '고스톱'을 치다보면 "야, 낙장불입이야 낙장불입!" 다투기도 하지요. 때이른 단풍잎 하나 주으려다 생각해보니, 인생이야말로 정말 낙장불입입니다.
이원규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