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쇼크 주범은 '아이폰 XR'···중국에서 안 팔린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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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많은 분들이 새로운 아이폰 XR을 이용하는 것을 보게 돼 기쁩니다. 당신의 일상에 새로운 색상을 선사해 기분이 좋네요.”

팀 쿡, 웨이보에 XR기종 홍보도 했지만 #저사양·높은 가격에 시장 반응 시큰둥 #이미 일본·중국서 XR 할인 판매 시작 #'차이나 쇼크'맞은 애플 실패작 운명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해 10월 올린 웨이보 게시물. [웨이보 캡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해 10월 올린 웨이보 게시물. [웨이보 캡처]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지난해 10월 27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노란 옷을 입은 중국인 모녀가 노란색 아이폰XR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는 사진과 함께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는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애플이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하기 위해 아이폰XR을 출시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대목이었다.

 두 달 뒤 애플에 ‘차이나 쇼크’가 찾아왔다. 아이폰XR 판매 부진이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 “아이폰XR은 애플을 실패에 빠뜨린 스마트폰”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를 보도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공략해 결과적으로 회사 차원의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다.

 아이폰XR은 지난해 하반기 애플이 출시한 신제품 중 가장 가격이 싼 보급형 모델이다. 비슷한 시기 출시된 아이폰XS, 아이폰XS 맥스보다 소비자 가격이 약 25%정도 저렴하다.

 기존 아이폰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색상으로 출시된 것도 아이폰XR만의 특징이다. 레드, 옐로우, 화이트, 코랄, 블랙, 블루 등 이전에 없던 총천연색 색상을 대거 입혀 애플 디자인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인 아이폰XR 기종 모델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인 아이폰XR 기종 모델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저가형, 색(色) 다변화’ 정책에 대한 시장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데 있다. 특히 중국 매출이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WSJ는 “애플이 정확히 스마트폰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수요가 예상보다 대폭 낮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전했다. “아직 출시 초기라 아이폰XR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판매 악화가 회사의 이윤 구조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인들이 아이폰XR을 외면한 주된 이유는 저가형이래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니어서다. 가장 싼 64GB 제품이 6499위안(약 945달러, 106만원)이다. 128GB 제품은 6999위안, 256GB 제품은 7899위안(약 129만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스펙은 아이폰XS나 XS 맥스보다 크게 쳐진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아닌 액정표시장치(LCD)를 탑재한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비슷한 가격에 훨씬 더 좋은 사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애플이 시장 실패를 맞은 원인이다. WSJ는 중국 소비자들이 안면인식이나 이중 심(SIM)카드 지원과 같은 기능을 중국산 휴대전화에서 저렴한 가격에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애플이 어정쩡한 가격에 특별할 것 없는 스펙을 구성해 제대로 된 고객층 잡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애플은 주요 시장에서 이미 아이폰XR 가격 인하를 시작했다. 지난달부터 일본에서 NTT도코모 등 통신사와 약정을 통해 아이폰XR을 30%넘게 할인 판매 중이다. 리서치회사인 BCN은 “일본 내에서 아이폰XR은 아이폰6S나 아이폰8 같은 이전 기종보다도 (인기가) 뒤쳐진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팀 쿡(오른쪽)이 아이폰 XR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팀 쿡(오른쪽)이 아이폰 XR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 중국에서도 보상판매에 한해 아이폰XR 기종 할인이 시작됐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연구원인 팀 아큐리는 “애플은 작년 10월 기준 전세계 스마트폰 생산량의 45%를 아이폰XR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었다”면서 “중국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현재 (XR모델의) 지나친 과잉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올 상반기 스마트폰 생산량이 3000만~4000만 대 가량 줄어 거의 반토막날 것으로 예측한다. 팀 쿡은 지난 2일 투자자에게 서한을 보내 올 1분기(1~3월) 매출 전망치를 기존보다 5~9%가량 줄였다. “주요 신흥시장에서 일어날 일부 어려움을 예상하긴 했지만, 중국 대륙에서 벌어질 경제 둔화의 여파를 예측하진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다. 지난해 10월 집중적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던 그의 웨이보 계정은 지난달 22일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멈춘 상태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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