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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문화대국' 일본을 만든 건 8할이 디자이너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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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대 사회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인공물은 디자인의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게 흔해서일까? 디자인에서 감동을 찾거나, 이를 영화.음악.미술 같은 보편적 교양의 일부로 보는 이는 드물다. 대신 산업의 한 요소쯤으로 가볍게 치기 일쑤다. 이 책은 이런 고정 관념을 거부한다. 디자인 세계는 감동과 열정, 그리고 창의성으로 가득한 우주라고 주장한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지은이는 디자이너 열 명의 삶과 이들이 독보적으로 개척한 새로운 세계를 논하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등장하는 디자이너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만큼 창의적이며 개성이 넘친다. 이 책은 주관적인 서술이 특징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히딩크 감독을 기품있는 신사로 만든 바로 그 양복이 '피부를 입힌다'는 바로 그 아르마니"라는 식의 설명이 되려 돋보인다. 이 대목에서 외국 저술가가 아닌 한국 필자의 시각으로 디자인을 보는, 실로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웅변하고 싶은 대목은 뒷부분에 있는 일본과 관련한 내용이다. 일본의 전통 건축에서 초현대적 건축의 개념을 이끌어낸 프랑스의 르코르뷔제와 그에게서 영향받은 뒤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이룬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은이는 안도와 이세이같은 일본 디자이너들이 전통과 현대, 로컬과 세계, 특수성과 보편성을 하나의 화음으로 연출해 오늘날 문화대국을 이루는 데 큰 몫을 했다고 강조한다.

안도 다다오는 자연과 건축물,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인간이 합일을 이루도록 공간을 연출한 '물의 교회'로 명성을 얻었다. 7년간 해외를 돌아다니며 독학을 한 그는 일본 전통 공간 개념을 현대적으로 적용해 건축 세계를 완성한다. 일본성을 현대화한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도 안도와 비슷하게 해외에서 디자인 수행을 하다가 일본의 전통에 눈을 돌린다. 프랑스로 건너가 기라로쉬와 지방시에서 일하며 인정받았던 그는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5년 만에 귀국한다.

그 결과 초현대적이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그만의 디자인 세계를 열었으며, 서양적이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이며 보편적인 자신만의 작품으로 전세계를 매료시켰다. 지은이는 서양을 따라가서는 1등이 되기 힘들며, 그들이 갖지 못한 전통 문화를 구축해야만 문화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 힘의 원천이라고 설파한다.

‘주름으로 세계를 주름잡은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현대적 감각이 물씬한 주름옷(오른쪽위). 대나무잎처럼 보이는 푸른 색 옷은 자연성을 표현한다. 필립 스탁이 영화감독 빔 벤더스를 위해 고안했다는 조각품 같은 후커 의자(上).

지금 일본이, 그들의 디자인이 강한 이유는 그것이 서양적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적이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선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도 한복이라는 풍부한 전통 자산이 있으나 이세이 미야케 같은 디자이너가 없다는 지은이의 지적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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