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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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리크루트 스캔들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단순히 정치부패가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다.
먼저 우리는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과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한지방주재 기자가 집념과 용기와 치밀한 취재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던들 이 사건은 한낱 가십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지난해 6월 이 신문사 지방지국에서 일하는 한 풋내기 기자는 경찰서를 드나들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 도시 부시장이 건축허가를 둘러싸고 어떤 업자에게 특혜를 준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경찰담당 선임기자는 그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몇 명의 기자를 묶어 취재팀을 구성하고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들 취재팀은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하는 사태까지도 대비하고 문제의 인물에 6번이나 접근, 인터뷰를 했다. 완벽한 방어 벽을 쌓아가며 위험한 취재에 임한 것이다. 그야말로 기자정신이다. 자기 직업에 성실하고, 그 직업에 부여된 사명과 책임 앞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낱같은 뿌리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캐낸 것이 결국 줄기에 이르러 오늘 일본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사태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신문기자의 사명감 하나로 된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 뒤엔 동경지검 특수부라는 또 하나의 사명그룹이 있었다. 주무검사는 57세의 「요시나가」. 그는 이미 76년 일본의 록히드 사건 때 「다나카」수상의 뒤를 캤던 엘리트 검사였다.
일본이라고 그런 검사에게 바깥 압력이 없으란 법이 없다. 리크루트 사건만 해도 여당의 중진이한 마디 했다. 『사건을 수습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검찰은 국가와 국민을 의해 있는 것인가.』그러나 검찰의 반응은 단호했다. 『옳은 말이다. 검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일당일파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자신들의 사생활까지도 빈틈없이 관리했다. 친구와 어울리는 것도, 술집이나 음식점,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것도 삼갔다. 그 정도로 공인의 자세가 엄격했다.
5공 비리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 정치의 발목이 잡혀있는 어느 나라와는 얘기의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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