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호 "고마워요, 승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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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 이승엽(中)이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7회 말 시즌 21호 투런홈런을 때리고 난 뒤 하라(右)감독의 환영을 받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성큼성큼. 당당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거침없는 페이스로 리그 홈런 부문 선두로 치고 나갔다. 시즌 세 번째 1경기 2홈런이다. 이승엽의 최근 홈런 페이스는 간간이 한 방씩을 쏘아올리던 시즌 초반과는 그 느낌도, 의미도 다르다. 이승엽은 15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홈경기에서 선제 결승홈런과 쐐기홈런을 펑펑 터뜨려 시즌 21호 홈런을 기록했다. 초반까지 멀게만 보였던 리그 홈런 선두 무라타 쇼이치(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기어이 따라잡고 이제 한 발 앞에 섰다.

▶요미우리 4번 타자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승엽은 이날 첫 타석에서 1사 1, 3루의 찬스 때 타석에 섰다. 팀의 4번 타자로서, 8연패에 빠진 팀을 구하기 위해 '당연히' 타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릭스 선발 가와고에의 유인구에 말려들어 2루쪽 병살타를 쳤다. 중계카메라가 요미우리 하라 감독의 실망한 표정을 잡았다. 이 순간, 아쉬워하며 고개가 숙여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승엽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병살타도, 삼진도 타격을 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타석에서 고개 숙이지 않는 거인의 4번 타자가 왜 당당한지 보여줬다. 0-0으로 맞선 4회 말 무사 1루에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은 가와고에의 컷 패스트볼(130㎞)을 퍼올려 도쿄돔 가운데 펜스를 넘어가는 2점 홈런을 때려 경기의 균형을 깼다.

▶"고마워요, 승짱"

이승엽은 6-1로 앞선 7회 말 무사 1루의 네 번째 타석에서는 구원투수 기시다의 몸쪽 공을 시원스레 걷어올린 뒤 홈런임을 직감한 제스처를 취하는 여유도 보였다. 타격이 끝난 뒤 공이 담장 너머에 꽂히는 걸 쳐다보고는 천천히 1루를 향해 출발했다. 시즌 20호와 21호를 잇따라 뿜어낸 이승엽은 62경기 만에 21개의 홈런을 기록, 이대로라면 시즌 146경기에서 49개까지 때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승엽은 6월 들어 세 번의 1경기 2홈런을 비롯, 8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홈런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승엽에게는 일본 야구의 상징 요미우리, 그 팀의 4번 타자로서 팀의 리더다운 모습이 묻어난다. 그에게 의지하는 동료의 부러운 시선도 느껴진다. 이날 승리투수가 된 다카하시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승짱(이승엽)이 홈런 2개를 때려줘 이길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승엽은 "홈런 21개로 1위가 된 것보다 팀이 8연패에서 벗어났고, 다카하시의 시즌 첫 승리를 도울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의 리더로서, 그를 눈여겨보고 있는 메이저리그를 향해 '준비됐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승엽은 시즌 타율 0.327을 기록했고 요미우리는 8-1로 이겨 8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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