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시론

조기 영어교육 확대 찬성… 국가경쟁력 높이는 데 '필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얼마 전 교육인적자원부는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시범실시학교들을 선정했다. 교육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향후 2년간 영어교육을 시범적으로 실시, 효과를 검증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러한 교육부 발표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교육부의 계획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시범실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나이가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의 잠재력이 커진다는 점은 이론적.실증적으로 검증됐다. 대부분이 인정하듯 나이 어린 학습자들은 나이 든 학습자들이 가지지 못한 신비스러운 언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면 우리말 사용 면에서 모국어 화자(話者)라고 불러도 거의 손색이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인지적.뇌신경학적.발성기관 등의 면에서 타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유연성이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를 잘 활용하면 외국어 학습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조기 영어학습으로 어린 학생들의 우리말 사용 능력이 저하될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우려는 미국에 이민 간 교포 자녀들처럼 영어가 사회생활에서 일상 언어로 사용되는 환경이어서 우리말 보존이 어려운 경우에는 해당하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언어 사용환경에서 주당 1~2시간 정도 영어 학습을 한다고 해서 우리말 습득에 장애가 발생하리라는 생각은 지나치다.

또한 조기 영어교육으로 인한 민족 정체성 훼손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우리의 필요에 의해 도구적인 목적으로 배우는 것이지, 영.미인으로 동화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미 영어는 전 세계인의 지구촌 언어(global language)가 됐다. 대외 진출을 통해 민족의 생존권을 지키고 확대해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될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조기 영어교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말뿐만 아니라 영어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무한 경쟁의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할 수 있는 만큼 폐쇄적 차원의 민족 정체성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나이 어린 학생들을 이중언어 사용자로 육성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족 정체성 확보 방안일 것이다.

우리는 1997년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영어교육을 도입해 10년째 실시해 오고 있다. 그 효과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나 적어도 초등영어교육 도입이 그 이전 세대 학생들에 비해 영어 사용에 있어서 친밀감과 자신감을 심어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큰 수확이다. 더 이상 뚜렷한 근거 없이 조기 영어교육의 폐해만을 강조하며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조기 영어학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도입을 우려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조치가 영어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초등영어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교육에서의 조기 영어교육이 보다 내실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자격 있는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의 확충 및 관리, 초등영어교사 양성 체계의 질적인 개선, 현직 초등영어교사들에 대한 중장기적 집중영어연수 프로그램 강화, 학교 내 영어체험 시설 및 영어학습 전용공간 확보 등 효율적인 조기 영어교육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준언 숭실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