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썬'개발하느라 선 볼 틈도 없었다 - 웹젠 김남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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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도의 꿈을 안았던 고졸 출신의 게임개발자가 창업 6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MS)에 온라인 게임을 공급하는 글로벌 게임회사를 일궜다. 김남주(36) 웹젠 사장. 그는 최근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쇼'E3'에서 온라인 게임 '헉슬리'를 발표했다. 헉슬리는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MS와 함께 비디오게임기(X-박스 360)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한 작품이다. 비디오게임이 주류인 북미 시장을 노린 김 사장의 기대작이다.

15일 서울 도곡동 사옥에서 만난 김 사장은 "헉슬리는 3차원의 화려한 영상, 스테레오 음향, 다양한 스토리 등의 콘텐트 외에도 비디오 게임용으로 즐길 수 있어 세계적인 게임전문지들이 기대작으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산 게임으로 '디지털 한류'를 일으켜 세계 게임시장을 제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최근 소니 게임부문 부사장 출신인 신디 암스트롱을 미국 지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사장은 월드컵 얘기를 꺼내며 "한국 대표팀이 불(佛)을 끄고, 우린 미(美)를 잡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달 말엔 새로운 게임 대작 '썬(SUN)'의 시험판도 내놓았다. 헉슬리가 북미 공략카드라면, 썬은 아시아를 겨냥한 야심작이다.

김 사장은 "썬은 개발 기간 중(지난해 말) 이미 중국 게임유통사에 1300만 달러를 받고 팔아 중국 판권을 넘겼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말 시범 무료 서비스를 시작, 보름 만에 이용자가 20만 명을 넘었다. 게임업계에서는 썬의 돌풍에 시범 서비스를 여러 차례 연기해 네티즌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작품 완성도를 높인 웹젠의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런 분위기로 김 사장은 올해 기대가 크다. 헉슬리 출시로 북미 시장에 진출하고, 썬으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한 뒤 세계적인 게임회사로 발돋움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매출도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600억원으로 잡았다. 글로벌 게임회사에 걸맞게 게임 중독 예방 캠페인 등 사회공헌 활동도 추진한다. 특히 썬에 '피로도' 기능을 달았다. 그는 "한 캐릭터가 12시간 이상 썬 게임에 접속하면 '피로하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더 이상 실적(경험치)을 얻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성공한 벤처기업인 반열에 올라 있는 김 사장은 1992년 서울예림미술고를 졸업한 학력이 전부다. 졸업 직후 컴퓨터설계(CAD) 학원에 다니면서 게임 세상에 눈을 떴다.

그는 "어린 시절 만화영화를 좋아했고, 미술에 푹 빠졌다"며 "좋은 대학 들어갈 실력이 안 돼 부모님 반대에도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PC통신에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으로 만든 아마추어 게임들을 올리면서 게임회사들의 눈에 띄었다. 93년 말 국내 최대 게임사인 미리내소프트에 개발자로 영입됐으나, 군 입대와 외환위기 등으로 한동안 '백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웹젠을 설립했다. 미리내에서 함께 일했던 조기용(웹젠 부사장).송길섭(웹젠 상무)씨와 의기투합해 서울 서초동에 사무실을 얻어 자본금 2억원으로 회사를 출범시켰다. 미리내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일했던 이수영(현 이젠 사장)씨도 투자자 겸 사장으로 합류했다. 김 사장은 "2001년 온라인 전투게임 '뮤'를 출시했다"며 "그해 말까지 이용자가 300만 명(매출 24억원)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2002년엔 대만(8월)에 이어 중국(10월)에 진출해 288억원의 매출에 152억원의 순익을 내면서 개발이사였던 김 사장이 대표이사에 올랐다. 2003년에도 코스닥 등록(5월), 미국 나스닥 상장(12월), 사상 최대 매출(569억원)로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2004년 이후 새로운 대작게임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직원은 700여 명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매출은 290억원까지 떨어졌다.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자만심의 차이를 얘기하며 소비자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한다. "자신감은 최고의 경쟁력이지만 도를 넘어 자만해지면 오히려 개인과 조직을 망가뜨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사장은 미혼이다. 부모님에 얹혀 살고 있다. 그는 "'썬' 개발로 선(결혼 맞선)을 못 봤다"며 "올해는 국내외를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선보기 어렵지만 결혼할 생각은 굴뚝 같다"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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