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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한미군 철수 막는다는 法, 트럼프 한다면 못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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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한 미국 국방수권법(NDAA)을 맹신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잇따라 이슈화하면서다. 한·미 간에 돈 문제(방위비분담금)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백악관이 꺼낼 다음 카드는 주한미군 감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군 철수 금지한다는 조항 없어 #분담금 대립 땐 ‘철군’ 돌출 가능성

① 감축 예산집행에 제동 걸었을 뿐=국방수권법은 올해 7월 미 하원에 이어 8월 상원을 통과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그달 13일 서명하며 발효됐다. 국방수권법의 4710개 세부조항 중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된 건 1264항이다. 이 조항은 “이 법으로 허용되는 예산 금액의 어떤 부분도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하는 데 쓰이지 않도록 한다”고 적시했다. 감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게 아니라 감축 관련 예산의 집행을 막는 방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시도에 제동을 건 셈이다. 그런데 이를 풀 수 있는 조치로 “주한미군의 감축이 ▶미국 국익에 부합하고 동맹의 안전을 심각하게 약화하지 않으며 ▶국방장관이 감축에 대해 한·일 등 동맹국과 적절한 협의를 거쳤다고 의회 군사위원회에 확약(certifies)하는 경우”를 적시했다. 따라서 ‘국방수권법=주한미군 감축 불가’라는 인식은 절반만 맞는 얘기다. 아산정책연구원 제임스 김 연구위원은 “국방수권법은 국방 예산의 용처에 관한 세출법안에 불과하다. 이 법안이 있으니 주한미군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여기면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미 국방수권법 입안자도 “대통령 권한 침해 위헌 소지”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도 “국방수권법은 예산 확정을 법률로 하는 미국의 특성상 나온 하위 법안에 불과한데 국내에선 이 법이 마치 미군 감축을 막아줄 것처럼 믿고 있다”고 말했다.

② 국방수권법은 ‘시한부’=이 법의 공식 명칭은 ‘2019 회계연도를 위한 국방수권법’이다. 미국 회계연도는 9월 30일에 끝난다. 따라서 이번 법의 수명도 내년 9월이면 다한다. 내년에 다시 의회를 통과하는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 2만2000명 규정’이 포함될지는 가봐야 안다. 또 현재의 국방수권법을 지키면서 주한미군을 감축해 한국을 압박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시나리오인데, 주한미군 순환배치시스템을 활용한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다. 미국은 2004년부터 본토의 전투부대를 한반도에 순환배치하고 있다. 올해는 10월에 6000명 규모의 여단을 한반도에 순환배치했다. 이 여단의 재배치 시점은 내년 7월께 결정될 전망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배치를 늦추면 사실상의 감축 상태가 된다. 현재 주한미군 규모는 2만8500명으로, 6000명 재배치를 지연해도 국방수권법의 2만2000명 감축에는 저촉되지 않는다. 한·미 간 방위비 협상 진행에 따라 미국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다.

③ “주한미군 숫자 명기, 위헌 가능성”=미국 헌법 2조는 군 통수권자를 대통령으로 명시해 군 병력의 지휘권은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일각에선 주한미군 병력 문제를 거론한 하위법인 국방수권법이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한다. 국방수권법의 문안 작성에 직접 관여했던 미 하원 군사위원회 인사는 최근 “군 통수권자의 권한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워싱턴 소식통에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를 전하며 “미국 내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한국에선 마치 국방수권법을 주한미군 감축을 막는 보루처럼 여기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수진·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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