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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으로 족발 시켜 먹고 장염 걸리면 배달 업체 책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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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10면

‘네이버페이’에서 구입한 선글라스 케이스를 뜯어보니 렌즈에 흠집이 있었다. ‘배달의민족’이 배달해준 족발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 고의건 실수건 판매자가 하자 있는 상품을 판 건지, 아니면 판매중개업자의 부주의인지 규명되지 않은 상태. 하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네이버와 배달의민족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내년 관련 상임위원회 등을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전재수 의원 발의 법 개정안 논란 #공급자보다 중개업자 우선 책임 #업계 “일자리 재앙 부를 것” 반발

온라인 상거래 시장 규모는 올해 100조원대. 개정안의 핵심은 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털·오픈마켓이나 배달앱 같은 ‘통신판매 중개기업’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상품 공급자가 아닌 상품중개업자가 먼저 책임을 지게 한다. 규제 대상엔 네이버스마트스토어·G마켓·11번가·쿠팡·위메프·배달의민족·요기요·카카오택시를 포함해 수백 개 기업이 걸려있다.

전 의원 측은 “현행법엔 중개업자가 자신이 중개업자이라는 것을 증면하면 면책이 된다”면서 “이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면서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법 개정 취지에 대해 소비자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소비자연맹부터 물음표를 던졌다. 정지연 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개정안이 소비자보호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이 되레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 책임을 1차적으로 져야하는 중개업자들이 ‘사고예방’ 차원에서 판매업자들을 깐깐하게 심사하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상품을 접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판매업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전국 수백 곳의 중소영세 판매업체들은 보통 2~3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면서 “이들 소상공인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퇴출당하면 엄청난 일자리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예 창업 의욕을 꺾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소비자 피해 책임을 사업자에게 물을 수 없다면 근본적으로 법 원칙에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백대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개정안을 이해관계자와 논의 없이 의원 입법 방식으로 처리하는 형태는 부적절하다”며 “민간차원의 자율규제가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법안에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배달앱 관계자도 “대부분 사업자들은 소비자 불만이나 피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옥상옥 규제로 기업의 발목만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 측은 “개정안 발의부터 한 뒤 관련 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토론회가 다음달 23일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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