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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돈”…배달의 일꾼, 3500원에 지금도 목숨 건 질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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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10면

5조원 배달앱 시장의 그늘

경기도 일산의 한 교차로에서 ‘라이더’가 횡단보도를 건너 배달에 나서고 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지 못한 이 라이더는 횡단보도 중간에서 곧바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어 질주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일산의 한 교차로에서 ‘라이더’가 횡단보도를 건너 배달에 나서고 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지 못한 이 라이더는 횡단보도 중간에서 곧바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어 질주했다. [김홍준 기자]

# 20여 년 전. 대학생 A씨는 몽고반점(가칭)에 자장면 배달을 시킨다. 학생회관 1층 공중전화에서 2층의 동아리방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철가방을 든 그가 나타난다. 서울 안암동 일대를 주름 잡고 있는 그 ‘배달의 기수’다. 여성고객에게 스타킹을 주고, 머리띠를 두르고 질주하는 등 독특함을 선보이지만, 그래도 그가 차별화로 내세운 첫 번째는 속도다. 그는 자칭타칭 ‘번개’로, 그리고 유명강사로 살아남았다. 그의 생존법이 통했다.

역주행·불법유턴, 인도로 폭주 예사 #시민들 “걷다가 깜짝 놀라 식은땀” #무면허·무보험 많아 사고 무방비 #보험 늘리고 안전 교육 강화 시급

# 20여 년 지난 현재. 19세 B군은 오토바이로 경기도 일산 일대를 질주하고 있다. 오토바이 후미에는 갓 튀긴 치킨이 든 배달통이 달려있다. 사장은 조심히, 그러나 빨리 다녀오란다. B군은 오늘만 중앙선 침범 2회, 불법 유턴 3회, 횡단보도를 비롯한 인도 질주 7회를 기록 중이다. 속도가 차별화 요건이 된 건 20여 년 전의 ‘번개’ 때였다. 지금은 필수다. 번개는 월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건당’으로 받는다. 한번이라도 더 나가야 한다.

배달 전성시대다. 배달의민족·요기요·배달통 등 3대 배달앱을 통한 주문은 지난해 5조원을 기록했다. 4년 새 10배 늘었다. 전화 배달까지 합치면 15조원에 이른다. 배달업 종사자는 6만 명에 이른다는 게 배달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배달기사들은 건 당 평균 3500원을 받고 콜센터에 200~300원의 수수료를 낸다. ‘회전율’이 높아야 배달기사들도 살아남는 구조다.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도로는 무법천지가 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김영철(39)씨는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는데 인도로 치고 올라온 배달 오토바이를 피하느라 식은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백경애(47)씨는 “운전 중 배달 오토바이가 불쑥 나타나 추월해 가면 섬뜩하다”며 “사고라도 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5년간 전체 교통사고는 2015년 23만2035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접어든 반면, 오토바이를 비롯한 이륜차 사고는 같은 기간 1만433건에서 1만3730건으로 32% 늘었다. 지난 4월 제주도에서 오토바이로 족발 배달에 나선 10대가 사고로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경기도 이천의 한 10대도 떡볶이 배달 중 숨졌다. 지난 9월에는 치킨 배달에 나선 10대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60대를 오토바이로 친 뒤 도주했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무면허였다. 4월의 제주도 사망사고 땐 무면허임을 알고도 배달을 시킨 업주가 30만원의 벌금에 그쳐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1~2016년 23곳의 병원 응급실에서 집계한 교통사고는 총 26만 여건인데, 이 중 배달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4500건에 이르며 15~19세 사고자가 15%에 달한다는  분석(질병관리본부)도 나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배달 오토바이의 보험 가입도 제대로 안 돼 있다. 타인에 대한 대물·대인만 보상하는 책임보험은 의무 가입이다. 본인 피해 보상 뿐 아니라 형사처벌 면책이 가능한 종합보험은 의무 가입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국토교통부에 신고 된 오토바이 216만6000여 대 중 종합보험 대인배상 항목에 가입한 오토바이는 12만3000여 대로 전체의 5.7%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달앱 업체에서도 배달 기사들의 안전 운행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에서는 ‘민트라이더’를 진행하고 있다. 류진 배달의민족 실장은 “빠른 배달보다 안전한 배달이 우선”이라며 “2015년부터 매년 라이더(배달원)들을 대상으로 오토바이 사고 예방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배달의민족은 또 소속 라이더 전원을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고 보험사와 협의해 라이더 전용보험을 만들기도 했다. 요기요도 맛집 배달 플랫폼인 ‘푸드플라이’ 소속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요기요의 김희연 팀장은 “라이더 사고를 막으려면 초기에 집중 교육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돈인 라이더들을 위해 교육 책자를 따로 나눠 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세 배달업체 라이더들은 무방비 상태다. 일산에서 치킨 배달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최소 연 400만원에 달하는 종합보험료를 내기가 벅차다”며 “대형 배달업체에 가입되지 않은 이상 종합보험에 가입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배달종사자도 보호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는 라이더들도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도 “준비 부족 상태에서 통과된 법이라 해석을 놓고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복적 사고를 막을 시행령·규칙 제정이 쟁점으로 부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 보호망이 취약하고, 시민을 보호할 겨를이 없는 B군. 치킨을 실은 그의 오토바이는 지금도 급하게 불법 유턴 중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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