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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담배맛 즐기는 동구 애연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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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블라고에프그라드.
지리시간에도 배웠을 리가 없는 불가리아 남부의 한 작은도시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도로사정이나 주변풍경이 꼭 서울∼여주의 산업도로와 같은 길을 승용차로 약2시간 남깃 남쪽을 향해 달리면 닿을 수 있다.
이맘 때 쫌이면 블라고에프그라드에도 4월의 눈부신 햇빛이 한산한 거리에 내리쪼여 한국의 여느 지방 소도시를 연상시킨다.
그 블라고에프그라드의 남쪽시계에 큰 담배창고가 하나 있고, 바로 그 담배창고 안에 K0M0C0라는 영문표기가 선명하게 찍힌 원통형의 나무로 된 잎담배 상자들이 집채만한 더미들로 곳곳에 쌓여 있다.
KOMOCO-.
이제는 한국담배인삼공사 (KT&G)로 이름이 바뀐 한국전매공사의 영문표기다.
블라고에프그라드의 담배창고에 쌓여 있는 잎담배는 바로 한국의 농민들이 경작한 것들이다. 이 한국산 잎담배는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 우선 그리스의 살로니카항에 부려졌다가 다시 기차로 블라고에프그라드까지 옮겨진다.
부산∼살로니카∼블라고에프그라드로 이어지는 코리아 로드를 따라 한국산 담배잎이 불가리아 남부의 한 창고에 도착하기까지는 보통 4O일 정도가 걸린다.

<북한식당서도 판매>
에게해를 지나고 발칸반도를 2백㎞쯤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먼 길을 실려간 한국산 담배잎들은 블라고에프그라드의 창고에서 미국 버지니아산, 브라질산 등 세계 각지의 담배잎들과 함께 저장되었다가 차례차례 불가리아 전국 각지의 9개 담배공장으로 나뉘어져 실려간다.
그러고는 비로소 담배로 만들어져 불가리아 국내에서 팔리거나 이란·이라크·소련·오스트리아·동독·폴란드·체코·헝가리 등의 국가로 수출된다.
동구 각 국의 애연가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국산 담배맛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 블라고에프그라드로 실려가는 것은 잎담배만이 아니다.
빈번하진 않지만 이미 한차례 솔·장미와 같은 제조담배가 한국∼불가리아의 코리아로드를 탔고, 그래서 예컨대 서울에서 양담배수입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는 솔·장미 등이 팔리고 있었다.
소피아의 한국담배 판매점 중에는 북한이 차려놓은 한국음식점인 평양식당이 끼여 있기도하다.
한국과 불가리아간에 이같은「담배 길」이 열린 것은 지난 87년이었다.
한국담배인삼공사가 공산권과의 담배교역로를 열기 위해 이리저리 문을 두드려 본 것은 10여년 전부터였으나 번번이 아무 응답이 없다가 87년 3월초께 불가리아의 전매공사인 불갈타박 (Bulgartabac)으로부터 교역의사가 전해져 온 것이다.
물론 그같은 교역의사의 전달도 한국담배인삼공사와 불갈타박간에 직접 오간 것이 아니었다.
공산권과의 첫 교역을 트는데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제3의 국제상인」들이 끼게 마련이고, 한국의 「담배 길」을 열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 한국과 불가리아를 중개해 준 제3국 무역상은 뉴욕에 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인 소코타드(Socotad) 잎담배 회사의 그리스 현지법인.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과 불가리아의 담배교역일 등으로 소피아를 이웃집 드나들 듯이 오가고 있는 소코타드소속의 그리스상인 「알레코스·키르마니디스」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초년대 초반부터 이미 우리는 한국과 유고슬라비아의 잎담배 무역을 중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전매공사와 직접 상대한 것이 아니고 서울의 우리 에이전트인 삼본산업을 통해서였다. 판로를 유고슬라비아이 외의 시장에까지 넓히기 위해 86년에 처음으로 한국산 잎담배 견본을 불갈타박에 소개했는데 별 반응이 없다가 87년 3월에 가서야 드디어 한국전매공사와 불갈타박 사람들간의 만남을 주선할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한국인들을 불가리아로 직접 들어가도록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비자가 나오질 않았다』 이래서 양국 담배상인들의 첫번째 만남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뤄졌다.
불갈타박측에서 「이시돌·라자로프」부사장과 「이반·크리스테브」수출입담당 이사, 전매공사측에서 이보현 당시 원료본부장과 이형섭 원료관리국장, 그리고 중개상인 소코타드의「H·S·벨트하이머」사장 등이 각각 소피아와 서울과 뉴욕에서 제네바로 날아가 87년 3월28일과 29일 이틀간의 상담을 진행시켰다.
이 때의 상담 결과로 87년말 한국산 잎담배 1백50t 29만4천달러 어치가 처음으로 부산에서 블라고에프그라드에 이르는 코리아 로드를 탔다.

<82년 박람회에 참가>
이어 다음해인 88년 5월에는한국전매공사의 홍두표사장과 불갈타박의 「디미타르·야드코프」사장이 서독 함부르크에서 만나 양기관간의 협력각서 (Memorandum)를 작성, 교환하는데까지 한 걸음 발전했으며 이 때도 역시 소코타드의 「벨트하이머」사장이 동석했다.
당시에 인준된 협력각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신탄진 소재 한국전매공사 사장과 불가리아 소피아 소재 불갈타박사 사장은 88년 5월7일 함부르크에서 양 기관의 거래증진과 모든 관계당사자들의 이익도모를 위해 본 협력각서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인준한다.
①양기관의 거래개선 및 유지를 위해 88년3월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기관의 실무대표간 서명한 합의서 이행에 최선의 지원을 다한다.
②양기관은 잎담배 및 제조담배의 교역량증대를 위해 최선의 지원을 다한다.
③양기관은 잎담배 및 제조담배의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상호 기술자 파견에 협조한다』
그같은 협력각서에 따라 지금까지 한국∼불가리아에 오간 물자는 총8백25t 2백97만3천달러어치의 한국산 잎담배, 솔·장미 등 80만갑 15만4천달러어치의 한국산 제조담배, 총 8백25t 2백97만1천달러어치의 불가리아산 잎담배 (한국의 대불가리아수입) 등이다.
우리 담배만이 나간 것이 아니라 금액으로나, 물량으로나 거의 비등한 교역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간 한국과 불가리아간에는 담배 몇백t이라는 물자의 값어치로는 따질 수 없는 더 귀중한 것이 오갔다.
『우리 불갈타박과 한국전매공사와의 담배 교역은 「봄을 알리는 첫번째 새소리」였다고나할까요. 나는 지금 한국과 불가리아 양국간의 관계에 곧 봄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소코타드가 큰 역할을 했지만 불갈타박은 한국과 불가리아와의 최초의 교역을 열었고, 우리는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2월7일 소피아의 불갈타박 본부에서 만난 「디미타르·야드코프」사장의 말이다. 그리고 양국간의 관계개선을 예고한 그의 말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 4일 헝가리·유고슬라비아에 이어 공산권에서는 3번째로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무역관을 열었고, 불가리아도 5월초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양국간의 교역이 공식화한 것이지만 불가리아에 한국상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82년 가을이었다.
당시 불가리아의 프로브디프 가을박람회에 국제상사와 삼성물산이 프랑스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가, 한국이나 국제·삼성 등의 이름을 일체 내걸지는 못했지만 신발·전자부품 등의 몇가지 한국 제품을 선보였었다.
그러다가 86년 봄 박람회때는 무공 빈지사가 불가리아의 빈 현지법인인 가멕스 (GAMEX)와 접촉, 역시 한국이라는 이름을 내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코트라 가멕스」 관 이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게까지 한걸음 나아갔다.
말하자면 코트라(KOTRA)가 대한민국의 무역진흥공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 아는」식이었는데 마침 박람회 기간 중 대화재를 만났던 불가리아 석유공단이 당시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었던 5개 한국업체 중 하나인 럭키금성상사와 화재현장복구를 위한 플랜트 수출건을 상담하다가 투자조건, 불가리아의 외환사정 등으로 깨져버리고 만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같은 박람회 참가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비공식·간접 교역은 그간 담배를 제외하면 싱가포르를 통해 아주 소량의 불가리아산 화학제품과 한국산 전자부품이 오간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지난 올림픽 기간 중 불가리아 상의대표단이 내한해 무공관 협정서를 교환했고 그 때의 협정서가 이번에 무역사무소 상호 개설로 개화하게 된 것이다.
불가리아와의 교역이 공식화하기까지 양국간의 비공식·간접 교역은 그만큼 뜸했고, 그래서 담배가 다시 불가리아와의 실질적인 교역을 뚫은 「첨병」으로 돋보이게 된다.
불가리아와 한국의 교역로를 놓는데 담배가 주춧돌을 놓게 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토양과 기후가 한국과 비슷한 불가리아는 3백년전 이상부터 담배가 매우 중요한 농작물이었고 50년전까지만 해도 담배잎이 거의 유일한 외화가득원어어서 「담배잎은 불가리아의 황금」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47년 전국 각지의 30여개 군소담배공장들이 지금의 불갈타박으로 통합되면서 불가리아는담배산업을 적극걱으로 육성, 이제는 세계8위의 잎담배 생산국, 세계 10위의 제조담배생산국, 세계 2위의 제조담배 수출국으로 자리를 굳혔고 지난해만 해도 약 7백40억개비의 제조담배를 수출하여 세계 담배 수출시장의 20%를 점유했다.
담배농사와 담배산업은 그만큼 불가리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불가리아와의 교역로를 개척하는 데는 담배라는 품목이 가장 적합한 매개체가 됐던 것이다.
여기다 그간 담배시장을 꽁꽁 닫아놓고 있다가 한미통상마찰의 결과 지난해 7월부터 담배시장을 열어놓게 된 한국으로서는 이제 적극적으로 우리 담배의 해외진출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큰 요인이었다.

<3국통한 대금결제>
한국과 불가리아의 담배 교역은 아직 초기단계다.
교역의 양이나 금액뿐만 아니라 교역의 형태도 아직까지는 모두 소코타드의 중개에 의해스위스 등 제3국의 은행을 통하여 수입신용장이 열리고, 송상이 보내지며, 대금이 결제된다.
무역사무소가 새로 열리고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의 대외개방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지금 한국과 불가리아간의 시간상·공간상의 거리도 더욱 단축되겠지만 우리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곧 우리가 양담배·일본담배의 수입을 반대한다면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한국은 공산권에 암을 수출하는가』라는 불가리아 국민들의 항의에 대한 답변도 예비해 두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코리아 로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것을 실어 내가기만 하는 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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