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대학생 장례절차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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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교육대학 본관옆 잔디밭.
지난 7일 『미제축출 자주·민주·통일』등의 구호를 외친 뒤 이 학교 강의 동건물 3층에서 신나를 끼얹고 분신한 남태현군 (23·윤리교육4)의 장례식이 유가족·동료학생·재야인사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대민주 학생장」으로 열렸다.
이날 장례식은 처음부터 『가족 장으로 치르고 화장한다』는 남군 가족과 『민주 학생장에 망월동 안장』을 주장하는 학생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 끝에 『교내에서의 영결식 뒤 천안공원묘지에 묻는다』는 합의를 얻어 가까스로 치러지게 된 것.
하지만 유족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아 불쾌한 표정들이었고 영결식을 지켜보는 민가협회원 어머니들과 학생들도 『열사 죽음의 의미를 가족들이 이해 못한다』며 못마땅한 기색들.
『내 이런 장사 처음 본다. 태현이가 민주와 통일을 외치다 죽어 갔는데 학생들보고 빨갱이라니, 그러고도 당신들이 친척이냐.』
자식이 감옥에 가 있다는 민가협회원 한사람이 욕설을 퍼부었다.
『죽은 자식 장사도 가족 마음대로 못 치르게 하면서 무슨 놈의 민주주의야.』 가족들의 거센 항의.
엄숙해야할 장례식장 한 귀퉁이에선 식이 끝날 때까지 가족과 민가협회원·학생들이 엉클어지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한풀이」를 계속했다.
오후 1시30분. 식을 마친 남군의 영구차가 교내를 한바퀴 돈뒤 막 교문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천안공원 묘지에 확인한 결과 「열사」가 묻힐 계획이 없다. 가족들이 「열사」를 화장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영구차를 둘러싼 채 농성에 들어갔고 『내자식 내 놓으라』는 가족들의 울부짖음으로 학교안은 온통 수라장.
부패해 가는 유해를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공방전 속에 남군의 사체는 이날 밤도 안장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분신뒤에 늘 따르는 가족들과 「민주투사」들간의 갈등. 기자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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