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막판 3골의 기적 '히딩크의 마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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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네덜란드)감독은 이제 '마법사'가 됐다. 맡는 팀마다 연전연승이다. 12일 오후(한국시간) 일본과의 경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는 선취골을 내주고도 후반 종반 8분간 세 골을 넣어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브라질의 한 TV는 "오늘 호주 경기는 4년 전 한국팀을 보는 듯했다. 압박과 스피드가 뛰어났다"며 "솔직히 호주라는 팀보다는 히딩크가 무섭다"고 했다.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호주와 경기를 앞둔 브라질의 간판 스트라이커 호나우지뉴가 경기를 앞두고 히딩크 공포증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히딩크 마법의 비밀은 무엇인가.

◆ 교묘한 심리전=전반 26분 호주 골키퍼 슈워처가 일본의 오가사와라의 팔꿈치에 부딪혀 넘어진 사이 나카무라의 프리킥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를 밀치는 반칙으로 보였다. 그러나 주심이 일본의 골을 선언하자 히딩크 감독은 4, 5부심이 앉아있던 부스로 뛰어 들어갔다. 몸을 던져 당시 상황을 재연하면서 '왜 골키퍼 차징이 아니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후반 중반에는 일본 수비수 쓰보이 선수가 넘어져 고통을 호소하자 '시간을 끌려고 일부러 넘어져 있다'면서 달려오던 일본 의무팀을 밀치는 등 성난 행동을 보였다.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분석이다. 심판에게는 판정 불만을 표시해 공정한 판정을 유도했고 침체돼 있던 선수들에게는 자극을 불어넣으려는 다목적 메시지였다는 해석이다.

◆ 절묘한 용병술=일본전 역전승은 용병술의 개가였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8분. 히딩크는 골 감각이 뛰어난 팀 케이힐을 교체 투입했다. 후반 16분에는 수비수 크레이그 무어를 빼고 스트라이커 조슈아 케네디를, 후반 30분에는 또다시 공격수 존 알로이지까지 투입했다. 교체 선수를 모두 공격수로 채웠다. 결과는 대성공. 패색이 짙던 후반 39분 케이힐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데 이어 44분에는 추가골까지 뽑아냈다. 후반 47분엔 알로이지가 쐐기골을 터뜨렸다. 교체 투입한 선수들이 남은 8분간 3골을 터뜨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상황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과 비슷하다. 당시 히딩크가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비에리의 선제골로 0-1로 지고 있던 상황. 히딩크는 이때 김태영.홍명보.김남일을 빼고 공격수인 황선홍과 이천수.차두리를 잇따라 투입하면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선수가 골을 넣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히딩크 감독. [중앙포토]


히딩크는 경기 뒤 "경기 막판 일본이 유난히 약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간파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외신은 조별 리그 첫 경기부터 극단적인 전술을 택한 히딩크를 '위험한 갬블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베팅은 항상 성공했다. 브라질.크로아티아 등 강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일본을 꺾지 못한다면 16강행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과감한 도박이었다.

◆ 선수 장악력=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이다. 지난해 호주 사령탑 자리를 맡자마자 그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완벽하게 파악한 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선수들을 조련하고 장악했다. "히딩크 감독을 위해 목숨까지 건다"던 사커루(호주 축구팀) 주장의 말에서 히딩크의 카리스마를 읽을 수 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도 자만에 빠져 있던 스트라이커 안정환을 벤치에 앉히는 방법으로 오기를 심어줬고, 박지성과 송종국 등 젊은 선수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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