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냐 개혁이냐 혁명이냐-김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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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헌정사는 45년도 채 안되었는데 그동안 쿠데타와 혁명이 연속되었다. 부산 정치파동쿠데타, 사사오입 개헌 쿠데타, 4·19혁명, 5·16쿠데타, 10월 유신 쿠데타·10·26혁명, 5· 17쿠데타, 6·29개혁 등 정변이 잇따랐다. 올해는 프랑스 혁명 2백주년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쿠데타나 혁명은 정권의 변경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쿠데타는 집권세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인데 대하여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국민에 의한 개혁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부산 정치파동이나, 사사오입 개헌이나, 10월 유신이 집권층에 의한 쿠데타인 점에 특색이 있다. 4·19혁명이나, 5·16혁명이나, 6·29개혁은 국민에 의한 혁명과정의 진행이었던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 나라의 짧은 헌정사에서는 짧은 국민혁명기 다음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던 것이 관례처럼 되어버렸다.

<쿠데타 명분 줄까 걱정>
4·19이후 1년 후에 일어난 5·16쿠데타, 10·26혁명이후 반년여 만에 일어난 5·17쿠데타 등의 악몽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6·29개혁이 후 2년이 가까워진 요즈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4·19이후의 민주화 열풍과 통일 열망이 일부 군부세력에 쿠데타의 명분을 준 것처럼 현재의 이념 대결이 행여나 새로운 쿠데타의 명분을 주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4·19후에 학생들이나 진보세력들이 성급하게 통일 운동을 벌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고 한다면 5·16은 예방될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정권욕에 어두웠던 일부 군인들이야 쿠데타를 하려고 기도했겠지만 나라의 안정이 유지되고 민생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 혁명도 잘못하면 왕정복고를 결과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도상 퀼로트에 의해 폭력 혁명화하고 1793년부터는 공포정치화 했고 1795년에는「나폴레옹」이 군사정권을 형성했고 1799년에는「나폴레옹」이 민선에 의한 황제가 되어 프랑스 혁명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영국「크롬웰」의 청교도 혁명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이에 비해 1689년의 명예 혁명은 의회가 주도한 개혁이라고 하겠다. 오렌지공「윌리엄」 이 의회가 기초한「권리 선언」을 승인함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1년 이내에 의회가「권리장전」을 제정·발표함으로써 의회의 권리와 국민의 자유가 법적으로 확인되었고 혁명이 달성되었다. 이는 먼저의 청교도 혁명과는 달리 내란이라든가 왕의 처형과 같은 유혈 참극없이 달성되었기에 명예 혁명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을 따를 것인가, 프랑스 혁명을 따를 것인가를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 파격한 가투와 이에 맞선 공권력에 의한 진압이 계속되는 경우 의회 민주정치는 부정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한 것은 극좌세력과 극우세력이 의회를 외면하고 가투만 일삼고 있었기에 중도 세력을 지지하던 중산층들이 안정을 위하여 극우 세력에 가담하여 결국 나치의 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가투 로는 민주화 안 돼>
의회를 불신하는 혁명세력이 가투에만 의존하는 경우 의회 민주정치는 종언을 고하게될 지도 모른다. 의회 정치에 대한 불신의 원인은 국회의 무능과 제도권 정당의 당리당략 때문이다.
제도권 정당은 좌우의 급진세력들을 포섭할 수 있도록 정책정당이 되어야한다. 모든 정당이 백화점식 정강 정책을 가지고 극우에서부터 극좌까지 다 포섭하려고 눈치를 보는 경우 어느 한 계층의 지지도 받을 수 없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기성 정당들은 보다 색깔을 명백히 드러내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여당이 보수이념을 내거는 경우 야당은 진보 내지는 혁신이념을 내세워야 한다. 현재의 4대 정당은 똑같은 정강정책을 가지고있고 다만 지역적 대표성에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역 감정에만 호소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실정이다. 기존 정당이 유산층을 대표하는 보수 정당이라면 4당 분립을 할 필요조차 없다. 영국의 정당정치사를 보더라도 휘그당과 토리당이 자유당이라는 과정을 거쳐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탈바꿈한지도 1백년이 넘었다.
독일에 사회 민주당이 성립한지도 1백10년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 중인 한국에서 근로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근로자·농민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하루빨리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 재야 단체에서는 정당화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으나 의회정치를 신봉하는 의회 민주주의자라면 하루 빨리 진보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
진보정치 연합 등을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 대표되어 있는 의원이나 무소속 의원 등과 제휴해서라도 원내에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소선거구 제하에 있어서 진보 정당의 국회진출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존정당들은 당리당략에 따라 이들 소외 그룹을 배제하는 입법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들 그룹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소외 계층을 국회밖에 내팽개치는 행위는 백해무익하다.

<국회 통한「명예 혁명」>
소외계층이 국회와 정당까지도 불신하는 경우 그들은 거리로 나서게되고 급기야는 폭력혁명을 기도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하여 표 대결로도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투만은 하지 않을지 모른다. 국회는 하루빨리 선거법을 개정하여 근로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이익 대표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재적인 왕정부고를 막기 위해서는 국회를 통한 개혁-명예혁명의 길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재야단체들도 가투로서는 민주주의를 개화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의회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또 폭력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폭력혁명의 방법은 버려야 한다. 급진 혁명의 방법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통한 민주화·복지화를 이룩해야 한다.<서울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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