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논술서적 통조림 교양보다는 알찬 생각의 씨앗 뿌리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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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공평해!
마띠유 드 로비에 지음
까뜨린느 프로또 그림
김태희 옮김
푸른 숲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의 비중이 커지면서 독서풍토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 대학별 시험까지 사이에 논술 예상문제집이 불티나듯 팔리고, 고전.명작의 해설집과 글쓰기 교본도 많이 읽힌다고 합니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지만 걱정도 됩니다. 이런 의무적 책읽기가 오히려 책에 대한 염증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허겁지겁 챙긴 '통조림 교양'이 논술 시험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게다가 책 한 권 읽고 글솜씨가 좋아지리라 기대하는 걸 보면 헛웃음도 나옵니다.

그런 면에선, 일부 엄마들이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논술용 책을 읽히는 것을 꾀 밝은 짓이라고 눈살을 찌푸릴 일만은 아닙니다. 굳이 논술시험을 들먹일 것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두면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터이고, 어릴 적에 몸에 밴 책 읽기는 그 지름길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어린이 철학책을 골랐습니다. 철학 책이라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로 끝나는 이야기 책이 아니라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는 내용일 따름입니다.

가스똥이란 어린이가 끝없는 질문과 불만을 제기합니다. 친구 앙리가 크레파스를 다 가져갔다거나, 할머니댁에 가고 싶은데 차가 고장났다는 등 "불공평하다"고 투덜댑니다. 여기에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는 "크레파스는 다 함께 쓰는 것이니 나눠쓰라"고 앙리를 타이르기도 하고"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불공평한 것은 아니야"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문답을 한 쪽에 담고 옆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곁에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아요'같은 사례와 관련한 교훈을 담은 형식입니다.

각 사례는 부드러운 선으로 된 그림이 함께 있어 아이들이 더욱 좋아할 만한데 내용은 의미심장한 것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모두 똑같은 것을 갖는 게 공평한 건 아니에요'라든지 '규칙이 정당하다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아요' '착하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어요'같은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6~8세의 어린 이기주의자들의 행복한 세상 나들이를 위한 제안이라는데, 아마 이런 것이 프랑스의 힘인가 보다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더군요.

이 책은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학교'시리즈 중 하나로 '나는 나답게' '내 마음대로 할 테야' '학교에 꼭 가야 해?' 등 나머지 책들도 꽤 알찹니다. 단 하나, 이런 책을 권할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던져주고 말면 효과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마주 앉아 같이 읽고, 아이들의 생각을 함께 나눠야 생각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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