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조용한 외교」가 주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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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7월의 이안-이라크 8년 전쟁 종식과「부시」미 행정부의 등장은 단교 9년의 미·이란 관계에 조용한「정상화로의 움직임」을 불러오고 있다.
미·이란은 지난 79년12월 이란회교 시위대의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 후 5개월만인 지난 80년4월7일 단절됐었다.
이란 정부는 지난주 대미 단교 9주년을 맞아「미국과의 관계개선」가능성을 비췄다.
이란 정부는 이같은 가능성은 ▲미국이 동결한 수십억 달러의 이란자산 반환과 ▲대 이란적대 행위 중지 ▲지난 87년 시작된 미국의 대 이란 무역금지 조치 해제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대 이란 관계개선 조건으로 ▲레바논의 친 이란계 게릴라들의 미국인 인질 석방과 ▲테러의 외교수단화 중지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팽팽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이란관계 해빙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미·이란 양국의 새로운 이해타산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서방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이란관계 개선 노력은 지난해 4월「라르자니」이란 외무차관을 앞세운 이란의 대미 접촉 시도로 표면화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 페르시아만 진출 미함 로버트호가 이란 선박 6척을 격침하는 무력 충돌로 이같은 시도는 무산됐다.
당시「레이건」행정부의「슐츠」국무장관은『이란이 관계개선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란은 이같은 대미관계 완화를「라프산자니」국회의장 등 현실주의자를 중심으로 줄곧 모색해왔으나 이란내 강경파와 현실주의자들간의 권력쟁투로 수차례나 전진·후퇴를 거듭해왔다.
특히「루시디」의『악마의 시』사건 이후 강경파가 득세,「이성회복」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호메이니」옹의 후계자「몬타제리」가 실권 그룹에서 벗어나면서 이란은 다시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층이 표면적으로 대미 반감 고취에 앞장서고 있는 것과 달리 일반 국민은 아직도「팔레비」시절에 겪은 대미 선호가 상존하고 있고 심지어 소련과의 오랜 국경분쟁 등 이유로 소련보다는 미국을 더 선호하고 있다.
이같은 이란내 속사정 및 외교노선과 아울러「부시」행정부는 이란과「조용한 외교」를 모색, 이란내 강경파를 자극하지 않고 새로운 중동 진출 내지 복귀를 노리고 있어 시기적으로 미·이란 관계 완화는 좋은 여건에 놓여져 있는 셈이다.
이란은 전후 복구에서 서방의 협력이 절실한 입장이고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사실상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으나 「호메이니」회교 혁명의 논리와 이슬람 수호라는 여러 요건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어 지금까지 대미 관계에서 파행의 길을 걸어왔다.
이같은 얽히고 설킨 양국의 입장이 얼마나 빨리 풀리느냐에 그 향방이 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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