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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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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 1팀 기자

전영선 산업 1팀 기자

혐오는 맹렬히 자란다. 이를 키우는 자양분은 도처에서 있다. 절망에서 이기심, 생활고까지. 이 중 으뜸은 돈이다. 혐오를 팔아 돈을 쥘 수 있는 최적의 시대다. 가위 ‘혐오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 중이다.

혐오가 어떻게 돈이 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은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다. ‘카톡썰’ ‘카톡대화’ 등의 해시태그(#)를 단 채널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구글의 수익창출 승인을 꿈꾸며 혐오를 찍어낸다. 제목은 가능한 한 자극적인 단어를 엮어 만든다. ‘외제 자동차 사줬더니 이제 꺼지라는 김치녀 역관광’ ‘비싼 지갑 찾아줬더니 갖다달라는 무개념녀’와 같은 제목의 영상이 조회 수 10만~400만 회를 찍는다. 카카오톡 대화가 오가는 것처럼 조작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돌려 만든 5~6분짜리 조악한 영상이 누리는 성과다. 톡 채널은 하루에 통상 영상 대여섯 개를 올리고 각 영상에 중간광고 2~3개를 붙인다. 광고는 대부분 10대, 20대 남성을 겨냥한 게임 광고다.

‘썰’들이 전파하는 서사는 단순명쾌하다. 욕심 많은 여성과 선량한 남성이 등장한다. 결말은 늘 같다. 권리만 주장하던 각종 ‘녀’들이 결국엔 벌을 받게 된다. 응징 방법은 돈이나 폭력, 둘 중 하나다. 개념 없는 여자가 무시했던 사람, 겸손하고 사려 깊은 남자는 알고 보니 돈이 많거나 힘이 세거나, 권력을 쥐고 있다. 채널 운영자는 “제보를 받은 실화와 창작을 섞는다”는 설명을 붙이지만, 사용자 대부분은 이를 사실 혹은 그럴법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응징이 자극적일수록, “사이다(통쾌하다)”라는 댓글이 이어진다.

실제로 수익은 어느 정도 날까. 유튜브 채널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종의 허가인 구글 애드센스 파트너가 되는 것이 까다로워졌지만 이미 승인이 난 채널은 이야기가 다르다. 가장 오래된 썰 채널 중 하나인 ‘오늘의 카톡’은 누적 조회수 6946만 회에 달한다. 광고 수익(통상 조회수당 1원)만 따져도 만만치 않은 액수다. 썰에서 진화해 연예인 사진과 웹툰을 삽입해 여혐 서사를 파는 각종 유머 채널도 혐오산업의 판을 키운다. ‘여혐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유튜버 보겸의 ‘보겸TV’는 280만 구독자를 자랑한다. 혐오 장사가 양지로 나온 이유도 결국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워마드는 독, 페미니스트는 노 너네는 정신병”이라고 외친 래퍼 산이는 어찌 보면 레드오션인 가요계를 떠나 떠오르는 혐오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택한 것일 수 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혐오시장 소비자다. 절대다수가 초등학교 남학생이다. 카톡썰로 세계관을 확립한 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지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혐오산업 발달로 인한 부작용은 사회가 지게 될 짐이 될 것이라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전영선 산업 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