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적 성과’ 더 이상 언급 안 하는 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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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 경제 성과를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어조가 17일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기점으로 다소 누그러졌다. 발언 초안에 들어있던 ‘가시적’‘속도감’이란 단어를 문 대통령이 모두 뺐다고 한다.
 완성된 원고에서 문 대통령은 “내년에는 우리 정부의 경제성과를 국민들께 보여드려야 한다”고만 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자주 썼던 ‘속도감 있게’라는 표현이나 ‘조속히’라는 말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2019년 경제정책방향 안건 보고를 듣고 있다. 2018.12.1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2019년 경제정책방향 안건 보고를 듣고 있다. 2018.12.17. pak7130@newsis.com

 문 대통령은 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로부터 첫 정례보고를 받을 때만 해도 ‘가시적 성과’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때만 해도 문 대통령은 “제가 몇 가지 당부한다면 일자리 문제는 내년부터는 확실히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靑 “조급한 모습 도움 안된다 판단”

 문 대통령의 어조가 바뀐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성과를 채근하며 조급해 하는 모습이 도움이 안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을 인정하고 시장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키로 했다”며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념적인 부분을 보다 덜 강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의 보고를 경청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 깊이 공감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첫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첫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신 문 대통령은 ‘공감’이라는 단어 등을 써가면서 국민들에게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모두가 함께 만드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주제로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전국 주요 상수원의 녹조와 각종 수질오염 사고에 대응하는 수질관리과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모두가 함께 만드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주제로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전국 주요 상수원의 녹조와 각종 수질오염 사고에 대응하는 수질관리과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17일 회의에서 “적어도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국민들께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선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한번 “특히 국민과 기업에게 우리 산업이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지 그 목표와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심층면접조사(FGI) 결과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조사에서 현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확신과 국민적 동의, 공감’ 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나 남북관계 개선 방향 등에 대해 국민 동의가 충분히 이뤄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공무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확신 없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느냐”며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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