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수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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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트럼펫(gideon's trumpet, 1980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앤소니 루이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주인공 기드온 역은 명배우 헨리 폰다가 맡았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조력 받을 권리가 있고…'

현행범으로 경찰에 긴급체포 당한 경험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드라마, 영화에서나 접하는 대사다. 이 대사가 있게 한 '미란다 판결'이 1966년 미국 연방대법에 의해 내려졌다.

미란다 판결이란 '비록 올바른 목적을 위한 것일지라도 부당한 수단이 쓰이는 것을 법률이 금지해야 한다'는 법해석을 뜻한다. 한편으론 지극히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여 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 '기드온의 트렘펫'을 통해 미란다 판결의 배경 지식을 쌓아보자.

1963년. 당시 21세였던 어네스토 미란다는 납치와 강간 혐의로 체포됐다. 피해자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 그는 변호사 없이 조사를 받았고, 범행을 인정하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서명했다. 미란다는 재판 과정에서 자백을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3년이 지난 66년6월13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피고인인 미란다가 미국 수정헌법 제5조(피의자가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규정된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로 피의자를 강제 연행할 권리를 가진 모든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강제 연행하거나 긴급 체포할 때 반드시 그 이유를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 등 기본권을 고지할 법률적 의무를 지게 됐다.

영화 <기드온의 트렘펫>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순박한 농부와 같은 이름을 쓰는 주인공의 법정 투쟁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주인공 기드온 역은 명배우 헨리 폰다가 맡았다. 영화는 주연 헨리 폰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청소년 시절 가출로부터 시작하여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보낸 주인공의 인생 역정을 술회하면서 시작된다. 기드온은 당구장에 놓인 자판기 동전을 턴 혐의로 붙잡힌다. 우습게도 그는 주머니에 동전이 있어야 맘이 놓이는 습관이 있었고, 이 습관과 그의 범죄 전력은 '보통 사람'이 그를 쉽게 범인으로 지목하게 한다.

교도소의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법률을 공부하는 기드온은 흑인 동료들의 응원 속에 연방 대법원에 청원서를 보내고, 연방대법원은 기드온의 청원을 받아 들여 재판을 연다. 우리에게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의 킹스필드 교수로 알려진 존 하우스먼이 대법원장으로 등장, 이렇게 말하며 기드온의 무죄를 선고한다.

"클레어런스 얼 기드온이 외진 교도소 감방에서 갱지 위에 연필로 사연을 쓰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사연에 대법원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미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미란다와 기드온에 의해 정립된 인권 존중 원칙은 지극히 당연한 판결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시각이다.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미란다 판결로, 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미란다 판결 이후 계속된 범죄 연구에서 기우로 밝혀졌고, 범 세계적인 형법 및 형사소송법 원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고문과 가혹 행위가 계속되고 피의자의 기본권이 침해된 채 수사와 재판이 강행되고 있다.

바른 논술을 써내기 위해 필요한 기본기는 바로, 모든 현상을 스스로의 시각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극장의 스크린은 때론 폭력적이고 때론 음란하기도 하다. 관객은 어두운 가운데 오직 스크린에 비친 영상만을 본다. 그저 시간을 때워주는 영화도 있지만, 자꾸 말을 거는 영화도 있다.

만약 <기드온의 트렘펫>을 본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법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고, 먼 오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사실이다.

법사회학의 시조로 불리는 루돌프 폰 예링은 이렇게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불법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 한, 법은 투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법의 생명이 바로 투쟁에 있기 때문이다."

◎6월13일 소사

-1900년,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 미란다 판결
-2000년,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
-2002년, 효순이 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

*영화로 배우는 논술은 이번 회로 시리즈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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