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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편, 길은 멀고 시간은 짧다…심상정, “산 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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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선거제 개편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의 신호탄을 일단 쏘아 올렸지만, 앞날은 안개에 싸여있다. 꼬인 정국을 풀어낸 반전은 손학규(바른미래당)·이정미(정의당) 대표의 10일간의 단식 농성에서 비롯됐다. 여야 5당은 지난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하고, 공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겼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로텐더홀에서' 여야 5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에 대한 소감 발표 전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손학규 바른미래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열흘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뉴스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로텐더홀에서' 여야 5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에 대한 소감 발표 전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손학규 바른미래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열흘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뉴스1]

정의당 소속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16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합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방향에 한국당이 동의했고, 10% 이내(최대 330석)로 제한이 있었지만 그동안 민주당·한국당이 금기시해 왔던 의원정수 확대를 공론화 한 점도 큰 진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지역구 최종 확정 법정 시한(선거일 전 1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높은 산들을 넘는데 숨 가쁘겠지만, 올해만큼은 법정 시한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연합뉴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연합뉴스]

그러나 정개특위에서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실제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당장 12월 중순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합의문에 선거제 관련 법안 처리 시점을 1월 내로 못 박은 것에 대해서도 우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정개특위가 내놓은 ▶의원정수 유지한 채 지역구 의석수 축소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의원정수 확대 등의 방안에 각 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려서다. 심 위원장도 “어제 합의로 산 하나를 넘었지만, 저는 또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선 지역구 의석수 축소에는 거대 양당의 지역구 의원들이 탐탁지 않아 한다. ‘눈 뜨고 밥그릇을 뺏기는’ 상황이 될 수 있어서다. 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농·어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의 경우 수도권에서 강세인 민주당이 부정적이다. 의원정수 확대는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 다수의 국민들이 찬성하지 않아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선거제도개혁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선거제도개혁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 위원장은 이날 “시기가 촉박하니 정개특위 논의와 각 당의 논의가 병행 추진돼야 한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강도 높은 국회 개혁 방안을 각 당에서 만들어 운영위원회를 통해 가시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제 개편 논의와 함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여야가 이달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기로 한 쟁점 사안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공공부문 채용비리의혹 관련 국정조사특위 구성 및 조사계획서 채택,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에도 각론에서는 이견을 보인다. 선거제 개편과 패키지로 묶일 경우엔 사안이 더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치원·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특별위원회 남인순 위원장과 의원들이 지난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3법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치원·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특별위원회 남인순 위원장과 의원들이 지난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3법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 논의의 결과는 소수당·무소속 의원들의 탈·입당 등 거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들은 거대 양당 소속이 아닐 때의 유불리를 계산하고 있다. 다음 총선 당선 가능성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서다. 지역구 의원들은 “힘 있는 당으로 들어가라”는 지역구민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다당제를 외치지만,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 권력 구조의 특성상 다당제가 정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 5당이 이번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에 합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른미래당 이학재 의원의 경우 한국당의 차기 당협위원장 응모를 앞두고 복당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의원은 이날 “오는 18일 복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입당설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끝내 무소속으로 남았던 이용호 의원도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연말연시에는 거취를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민주평화당도 김경진·이용주 등 일부 의원의 탈당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9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시정연설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9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시정연설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여야가 합의를 본다면 대통령으로서 함께 의지를 실어 지지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약 30분간의 면담은 문 의장의 요청으로 성사됐다고 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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