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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백년의 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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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1957년 10월 4일. 미국은 경악했다. 소련 깃발을 단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방심한 사이 우주전에서 밀린 미국의 자존심은 처참히 구겨졌다. 공포도 엄습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언제든 미국을 겨냥할 수 있어서다. ‘스푸트니크 쇼크’다.

올해 환갑을 맞은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충격의 산물이다.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69년 7월 20일 달 착륙에 성공한 뒤에야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후 미·소의 우주 경쟁도 일단락됐다. 역사는 반복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중동에 집중했다. 중국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침없이 세(勢)를 키웠다. 2015년 첨단 제조 강국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그 출사표가 ‘중국제조 2025’다. 로봇공학·인공지능(AI)·통신장비·항공우주 등 10대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청사진이다. 미국이 우위를 점한 산업 분야에 낸 도전장이다. ‘중국발 스푸트니크 쇼크’다.

중국은 산업 구조조정 전략이라 주장한다. 미국은 저의를 의심한다. ‘중국제조 2025’의 결승점은 2049년이다. 공산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미국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인 마이클 필스버리는 『백년의 마라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마오쩌둥부터 현재 중국 지도부까지, 강경파들은 줄곧 2049년까지 치욕의 세기를 설욕하고 경제·군사·정치적으로 미국을 추월해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열망해 왔다. 이 계획이 바로 ‘백년의 마라톤’이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꾀하는 ‘중국몽(中國夢)’에 맞닿아 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중국제조 2025’는 위험하다. 경악한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맹공을 퍼부은 까닭이다. 미국의 공세에 ‘백년의 마라톤’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의 전략 수정과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지난 1일 두 나라가 ‘90일 휴전’에 합의한 뒤 이어진 화해의 제스처다. 신흥 패권국과 기존 패권국이 충돌하며 파국을 맞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일단 피했다.

중국이 ‘백년의 마라톤’을 포기할 리 없다. 분명한 것은 결승점까지 달리려면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내려놓고 시진핑의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택한 중국은 치욕의 경험을 반복할 수 있다. 각성한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