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제2의 대종빌딩 막을 법안,국회서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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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대종빌딩이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강남구청은 13일 0시부터 대종빌딩 출입문을 폐쇄조치하고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대종빌딩이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강남구청은 13일 0시부터 대종빌딩 출입문을 폐쇄조치하고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 [뉴스1]

준공 30년도 안돼 붕괴 위험으로 폐쇄된 대종빌딩 사태로 노후 건물의 안전관리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축물 유지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8월 발의됐지만 낮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호영 의원 건축물관리법안 8월 발의 #건물주 '건축-유지관리-해체' 계획 마련해야 #"선진국엔 이미 법률 있어. 조속히 시행해야"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호영 의원 외 15명이 발의한 '건축물관리법안'이 상임위에서 현재 계류 중이다. 대표 발의한 안 의원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건물 짓기에만 관심이 높고, 건물 유지관리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면서 "해당 법안을 통과되면 소유주가 건물을 짓기 전에, 건축뿐 아니라 유지보수와 해체 등 전 과정에 대한 계획과 방법을 수립해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국토부 자료를 인용해 한국 내 사용승인 후 30년이 경과한 노후 건축물이 전체의 36%(2017년 기준)가 넘으며, 2020년에는 4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것보다 기존 건축물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유지관리하는 쪽으로 사회적 관심이 전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에는 대종빌딩과 같은 소규모 집합 건축물(공동주택·연립주택·오피스텔)에 대한 내용도 명시됐다. 이같은 건물이 '행정 감독의 부재로 제도적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면서 건물 사용 승인 후 30년이 지나면 지자체장이 건물주에게 구조안전·화재안전·에너지 성능 등을 일괄 점검하도록 요구하고, 그 결과와 개선방안을 제공받게 했다. 연면적 100㎡ 이하인 건물은 제외한다.

현행 시설물안전관리에대한특별법(시특법)에 따르면 정밀진단 의무 대상은 16층이 넘는 1·2종 건물이다. 대종빌딩은 지하 7층 지상 15층으로, '15층 이하 소규모 건축물'로 분류돼 정밀진단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계류 중인 건축물법안법안에 따르면 연면적 1만4799㎡인 대종빌딩은 지자체장의 안전점검 대상이 된다.

건물주의 관리 책임도 강화하는 방안을 담았다. 건축물 사용승인 후 5년 이내에 최초 점검을 실시해야 하고, 이후 3년을 넘기지 않는 주기로 정기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현행 건축법에는 사용승인 후 10년이 지난 뒤부터 2년마다 정기점검을 하게 돼있다. 정기점검은 대체로 육안점검을 시행된다.
또 국토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건축물의 노화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긴급점검을 요청할 수 있고, 건물주는 이에 응해야 한다. 건물주가 이를 어길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자체에서도 해당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서울시 한일기 건축관리팀장은 "대종빌딩이 완공된 당시는 6공화국 시절로, 100가구 주택 건립을 추진하면서 건축 자재인 모래·자갈이 모자라 중국산 시멘트나 바다 모래까지 끌어다 쓰기도 했다"면서 "이 시기 지어진 건물이 대거 노후화되는 시점이니만큼 건물 유지관리 방안이 강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대종빌딩 2층 오피스텔에서 관계자들이 중앙 기둥이 겉면 콘크리트가 부셔져 드러난 철골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는 대종빌딩 붕괴 위험으로 입주자를 퇴거 조치했다. [뉴스1]

12일 서울 강남구 대종빌딩 2층 오피스텔에서 관계자들이 중앙 기둥이 겉면 콘크리트가 부셔져 드러난 철골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는 대종빌딩 붕괴 위험으로 입주자를 퇴거 조치했다. [뉴스1]

전문가들도 해당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건축물은 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반이 가라앉거나 진동이나 추가 하중 등이 조건이 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법률로 건물 유지보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도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사회적으로 건물 관리의 중요성을 환기하게 될 것"이라면서 "선진국도 건축물 보수보강을 법으로 정해둔 만큼 우리나라도 이같은 법안이 조속히 시행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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