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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5. 살사음악의 뿌리…쿠바의 '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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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선 현재 '송(Son)'음악이 최고의 인기다. 1900년 무렵 쿠바 동부 오리엔테 지역에서 발생한 송은 쿠바 음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전의 오케스트라들이 10인조 이상의 '비만'이었다면 송음악 밴드들은 군살을 쪽 뺀 6인조 편성이다. 송음악의 생생한 현장을 보기 위해 아바나의 명문클럽인 '카사 데 라 무시카(음악의 집)'를 찾았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20달러다. 아무리 당대 최고의 밴드들이 무대에 선다지만 의사 월급이 약 25달러인 쿠바의 현실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비싼 액수다. 그래서인지 쿠바 사람들보다는 관광객과, 그들을 유혹하기 위한 쿠바 여성들이 주고객이란다.

이곳에서 만난 아달베르토 알바레스(Adalberto Albarez)는 매년 쿠바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송 페스티벌' 의장이자, 송음악의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그는 "쿠바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이 송"이라며 "살사는 송과 '구아라차(Guaracha)'같은 여러 쿠바 음악이 합쳐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흥겨운 음악이 열대과일의 과즙처럼 쏟아져 나왔다. 여러 명의 보컬과 코러스, 두꺼운 타악기 리듬과 시원한 관악기 연주까지 춤과 음악 앞에선 인종구분도 의미가 없었다.

시작부터 흑.황.백 인종구분 없이 클럽은 하나의 춤판이 됐다. 골반을 이용해 하체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댄스는 무척 관능적이었다. 송음악을 듣고 있자니 정말 살사와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아프리카.스페인 리듬 섞여

주말에는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무도장인 '살롱 로사도 데 라 트로피칼'을 찾았다. 말이 무도장이지 이곳은 웬만한 학교운동장보다 넓은 엄청난 규모였다. 입장료도 1천~2천원으로 저렴해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인 이들은 저마다 한껏 멋을 부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뮤지션들의 표정도 관객처럼 행복 그 자체였는데, 그때서야 마놀리토 시모넷의 설명이 이해가 됐다.

"쿠바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관객과 뮤지션의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요." 이들은 서로가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쿠바에서 만난 많은 뮤지션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도 떠올랐다. "춤추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쿠바에서 춤은 가끔씩 즐기는 여흥이 아닌, 생활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 리코 바일로 요!'(Que Rico Bailo Yo) 우리말로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까'라는 뜻의 이 말은 쿠바 음악의 고전 가운데 하나인 오르케스타 리트모 오리엔탈의 곡명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룸바(Rumba).차랑가(Charanga).당송(Danzon).맘보(Mambo).차차차(ChaChaCha).살사(Salsa)까지 세계적 인기를 얻은 쿠바 음악 대다수가 댄스뮤직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바로 서부 아프리카 음악이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서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리듬이 오늘날 쿠바는 물론 아메리카대륙 전체 음악의 뿌리가 됐다.

이에 대해 그룹 이라케레의 리더이자 세계적인 재즈피아니스트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는 "쿠바.브라질.미국의 음악은 서부아프리카 요루바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프로-쿠반.아프로-브라질리안.아프로-아메리칸은 모두 뿌리가 같은 음악"이라며 "라틴재즈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아프로-쿠반재즈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음악평론가 기예르모 빌라르는 "쿠바는 브라질과 함께 흑인 노예들이 직접 끌려온 몇 안 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라면서 "쿠바에는 원주민음악(문화)이 없어요. 스페인 사람들이 전멸시켰거든요. 그래서 음악적으로도 강렬한 아프리카리듬과 스페인 음악이 주로 섞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아프로-쿠반'리듬인 것이다.

미국의 오랜 봉쇄정책과 소련의 해체로 인해 쿠바는 분명 더욱 힘겨워졌다. 춤과 음악은 어쩌면 그토록 고된 현실을 잊는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쿠바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으로 음악과 춤을 즐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혈관을 흐르는 유전자를 통해 리듬이 고동치는 듯했다. 그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길 뿐이었다.

*** 음악.춤은 고된 일상의 탈출구

갑자기 그처럼 춤에 몰두한 그들 앞에서 눈을 부라린 채 장르를 꼬치꼬치 캐묻는 이방인의 모습이란!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짓는데 춤추던 누군가가 외친다. "비바 라 무시카!(음악만세!)" 그래, 음악만세, 춤 만세, 리듬 만세, 쿠바 만세다!

아바나=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mbc-fm '송기철의 월드뮤직'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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