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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대 최고령 졸업 문 수열 씨 |"독립운동사 재정리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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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나의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45년 우리 임시정부의 국내 진공작전요원으로 선발돼 특수훈련까지 마쳤으나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연합군」이 되지 못했던 광복군 문수열씨(66) 가 1일 오후3시 서울 잠실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 6천2백85중 최고령으로 국문학 학사졸업장을 받았다. 문씨는 이미 3월중 국민대 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 스스로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독립운동사」정리·연구에 본격 도전하고 있다.
『배운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인데 늙은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소. 사라져 가는 독립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망각·왜곡되고 있는 독립운동의 참 정신을 전할 책을 쓰고 싶어요.』
문씨는 1923년7월15일 경남진주에서 측량기사인 아버지 문창식 씨와 어머니 김봉수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멀리 평북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 민족의식에 눈뜨고 식민의 설움에 비분을 삼키던 문씨는 졸업반이던 1943년 마침내 민족의 대의 앞에 젊음을 던지기로 결심했다. 선생님과 선배들로부터 들어온 광복군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은밀히 수소문, 광복군과 선이 닿아 친구4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었다.
북경으로 간 문씨 일행은 안내를 맡기로 했던 사람이 맹장염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3개월간 문전걸식의 고난을 겪으며 중국대륙을 횡단했다. 기어이 남부전선에 배치된 광복군제3지대 본부에 도착, 「해방전사」의 제복을 입었다.
『노예로 사느니 일제에 맞서 싸우다 죽자고 맹세하고 떠났어요. 당시 독립운동이란 곧 죽음의 길이었지만 많은 청년학생들이 우리처럼 광복군이 되고자 국경을 넘었죠 .』 밀가루 떡과 콩나물국으로 끼니를 때우며 훈련에 몰두하던 문씨는 45년5월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연합군」자격으로 미군특수부대인 0SS에 들어가 3개월간 무선통신·정보수집·파괴공작 등의 게릴라전술을 익혔다. 지리산지역에 B29수송기로 공수·침투할 날만을 기다리던 중 뜻밖의 해방을 맞았다.
『광복군이던 우리가 희생만 됐더라면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었을 텐데….』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조국의 참 독립을 갈구했던「광복군」 노병은 요즘 우리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보며 더없이 착잡한 심정이다. 후손들을 상대로 결코 잊어서는 안될 과거의 진실을 바르게 알려줄 독립운동사정리는 그래서 그에게 독립운동의 연장인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나라를 찾으려는 열망이 담긴 책」 을 쓰겠다는 그의 열정에 빛나는 눈은 아직도 젊은 투사의 그것이었다.<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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